정혜승의 HER story, 또 다른 나를 향한 내밀한 독백
[아츠앤컬쳐] “고전적 방식의 인물이 아닌 특정한 캐릭터를 만든다. 현실과 이상에서 혼돈의 삶을 살아가며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현실 속 그녀들’이 주인공이다. 한 번쯤은 꿈꿔보는 일탈의 욕구, 그녀의 내면을 ‘외출’이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풀어가고 있다. 영화 속 한 장면의 그녀처럼 가장 예쁘고 화려한 모습을 꿈꾸기도 한다. 외출 준비를 한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가서 멋진 꿈과 기회와 인연을 만날 것을 기대한다.”
외출은 용기이자 도전이다. 평온한 은신처를 벗어난다는 결심은 스스로 결정하기 쉽지 않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H. Maslow, 1908~1970)가 말한 「욕구단계설」의 ‘인간이 지닌 5대 욕구’에도 등장하는 대목이다. 정혜승의 ‘HER story’ 시리즈는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욕망의 단계별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
인간이 추구하는 기본 5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로 출발한다. 생명을 유지하려는 원초적 욕구인 의식주(衣食住)와 성욕을 향한 욕구가 이에 해당한다. 다음은 ‘안전 욕구(Safety)’이다. 기본 욕구가 충족되면 주변 환경의 불안감 요소를 탈피해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그 이후 타인과의 관계나 귀속을 추구하는 ‘애정·소속 욕구(Love/Belonging)’ 단계에 접어들며, 좀 더 구체적인 상호 친밀감을 통한 ‘존중의 욕구(Esteem)’를 향하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자기 계발과 내재한 잠재력을 발휘하려는 ‘자아실현 욕구(Self-actualization)’이다.
정혜승 작품의 첫인상은 화려함이다. 세상에 구애라도 하려는 듯, 여주인공은 한껏 멋을 낸 모습이다. 이제 막 나서려는 찰나이거나, 방금 외출한 것처럼 생기가 넘친다. 미려한 손짓과 시선은 뭇 이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다. 세상은 이미 그녀가 주인공인 된 무대인 듯, 충만한 자신감이 인상적이다. 이젠 화려하게 펼쳐질 내일의 레드카펫을 걷기만 하면 된다. 정 작가는 그녀들에게 안성맞춤의 시나리오를 건넸고, 패션 잡지 속 모델의 멋진 포즈처럼, 성공 예감의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려는 저마다의 이유는 다양하다. 상대에 대한 구애 혹은 연약한 내면의 모습을 가리고 싶을 수도 있다. 역으로 오히려 감춰졌던 또 다른 자아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일 수도 있다. 여성에게 꾸밈이란 일상의 화려한 파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자신감의 표출이기도 하고, 서로 소통하고 싶은 무언의 시각적 언어가 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긴요한 수단’임에 분명하다. 정혜승 역시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그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화면 속 ‘그녀’는 작가 자신이기도 하겠지만, 바라보는 모든 ‘누구나’이기도 하다.
정혜승 작가의 작업방식은 아주 주도면밀하고 세밀한 감성까지 이입시킨다. 화면구성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게 확인된다. 우선 옆으로 돌리고 있는 여성의 시선 처리가 중요하다. 이는 ‘화면 밖의 보이지 않는 꿈과 이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시선을 화면의 중앙에서 외곽으로 돌린 것이다. 여기에 그녀의 작은 목소리를 대신하는 손짓이 더욱 돋보이도록, 전신보다 얼굴 혹은 상반신에 주목한 화면구성을 선호한다. 색채 역시 혼색보다 튜브에서 짜낸 원색을 활용해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원초적 미감’을 선사한다.
정 작가에게 그동안 천착해온 작품세계에 더욱 큰 확신이 서게 한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해 참여했던 아트페어에 어느 젊은 고객 덕분이다. 결혼 후 가사와 출산으로 경력 단절된 누나가 다시 재취업을 하게 되어 ‘누나의 새로운 도전과 새 출발’을 축하하는 의미의 선물로 작품을 구매한 것이다. 정혜승의 ‘HER story’ 시리즈로 전하려는 메시지가 통한 것이다. 겉모습의 화려함은 연약함을 가리기보다, 새로운 도전과 용기로 내일을 개척하겠다는 그 이면의 당당함과 의지임을 알아본 것이다. 예술가로서 삶이 전하는 큰 보람이자 행복이다.
살면서 누구나 평범한 일상의 일탈을 꿈꾸기 마련이다. 정혜승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그 욕구를 대리 만족시켜준다. 적당한 일탈은 삶의 소중한 행복이자 에너지가 될 수 있으니 용기를 내어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매슬로 역시 인간의 욕구 중 ‘자아실현’이란 마지막 5단계 너머에 ‘자기 초월의 욕구’가 있다고 덧붙였다. 자기 자신만의 완성을 넘어서 타인이나 세계까지 생각한다는 것이다. 정혜승의 ‘HER’는 내가 곧 타인이고 사회의 거울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정혜승의 개인전은 이달 3일부터 9일까지 동인천 우현문갤러리에서 열린다.
정혜승 작가는 경기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4회의 개인전과 수십 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주로 여성 주인공 ‘HER’를 중심으로 일상의 다양한 표정과 에피소드를 드러내는 그림이 특징이다. 마치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여성의 감성을 대변하듯, 독특한 인물의 표정과 강렬한 색채는 많은 이들에게 친밀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그동안 2021 모란미술대전 특선, 2020 경인미술대전 입선, 2020 대한민국열린미술대전 삼체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인천서구도서관을 비롯해 여러 개인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다.
글 | 김윤섭
명지대 미술사 박사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겸임교수
아이프aif 미술경영연구소 대표
정부미술은행 운영위원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