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내년부터 일년간 베를린필에 ‘상주 예술가(Artist in Residence)’로 활약하게 된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로서 서양음악에 관한 한 세계 최고 권위의 음악의 전당 베를린필하모니에 공식 멤버가 되어 활동하게 된 것이다. 아시아 음악가로서는 역사상 두 번째 인물이다. 첫 번째는 일본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이다. 그는 1948년생으로 62세때인 2010년 베를린필 상주 예술가로 활약했다. 조성진이 1994년생으로 29세인 것을 비교하면 그가 얼마나 빨리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베를린필 대표 안드레아 쥐츠만은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시작된 대망의 아시아 투어 일정 중 지난 11월 서울 예술의전당 연주 하루 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성진은 매우 직관력이 있는 음악가”라며 “조성진의 상주 예술가 선정은 사실 유럽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입니다. 유럽 관객들이 한국 신문을 읽지는 못할 테니까 밝혀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해외 주요 연주단체나 공연장이 그런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공연장이나 오케스트라에서 상임 예술가를 선정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다. 상임 음악가 중에는 2006년 서울시향 상임 작곡가로 활약한 작곡가 진은숙이 있다. 당시 서울시향은 진은숙의 곡을 자주 초연함으로 레파토리를 넓혔다. 베를린필은 진은숙의 작품을 새로 녹음해 도이체 그라모폰 레이블로 출시할 예정이다.
서울시향은 2022년 스웨덴 트럼펫 연주자 호칸 하르덴베리에르와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를 ‘상주 음악가’로 선임했다. 산하 연주단체가 없는 롯데콘서트홀은 상임 예술가 제도 운영에 더욱 적극적이다. 2021년에는 코리아챔버오케스트라와 에스메 4중주단을, 2022년에는 첼리스트 문태국과 피아니스트 신창용을, 2023년에는 피아니스트 이진상과 바이올리니스트 윤소영을 각각 ‘인하우스 아티스트’로 선정했었다.
따지고 보면 서양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야말로 오늘날 ‘상주 예술가‘의 원조격이 아닐까. 바하는 1723년부터 1750년까지 라이프치히에 있는 토마스교회의 칸토르 즉 상주 예술가로서 주일 예배 음악을 책임졌다. 재직 27년간 바하는 무려 300여 곡에 달하는 불멸의 칸타타를 작곡했다. 거의 매달 예배 중 세계 초연 칸타타 시리즈를 펼쳐나간 셈으로, 저 유명한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과 함께 수많은 오르간곡, 앙상블곡, 성악곡, 모테트를 남겼다.
바하가 그 엄청난 음악을 만들고 초연했던 토마스교회의 크기는 1,400석 정도다. 우리나라에 토마스교회보다 더 크고 재정적 여유도 있는 한국 대형 교회 또는 가톨릭 성당들에 제2의 바하를 키워낼 수 있는 상주 음악가 제도의 적극 도입이 정말 아쉽다. 물론 한국 고전음악의 선봉장 ’예술의전당’이 맨 앞장을 서야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상주 예술가(Artist in Residence)’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막중하다. 베를린필은 통상 상주 예술가와 연간 1-2회 협연 및 단원들과 앙상블 연주회도 몇 차례 갖는다. 이외 베를린필이 주관하는 아카데미에 본인이 원할 경우 지도자로 참여할 수 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세계 최정상 음악 전문가 집단인 베를린필 단원들과 음악적 교류를 하기에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음악가라는 위치가 확인됐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성진의 음악적,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적 모든 역량을 포함한다. 아마도 내년부터 조성진 피아니스트는 베를린필 건물에 손님 출입카드가 아니라 신분증 사진과 상주 예술가 조성진이라 인쇄된 출입카드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으로는 박경민 비올리스트가 2018년 3월 20일부터 베를린필 종신단원으로 이 건물에 상주 중이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베를린필 상주 음악가로서 맹활약을 통해 더 높고, 넓고, 깊은 고전음악 세상을 여행하며 우리를 더 기쁘게 하고, 위로하고, 따듯하게 해주기를 바란다.
글 | 강일모
경영학 박사 / 에코 에너지 대표 / 차의과학대학교 법인이사 / 제2대 국제예술대학교 총장 / 전 예술의전당 이사 / 전 문화일보 정보통신팀장 문화부장 / ‘나라119.net’, ‘서울 살아야 할 이유, 옮겨야 할 이유’, ‘메타버스를 타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