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파크 앞을 지나는 왕실기마근위대
그린 파크 앞을 지나는 왕실기마근위대

 

[아츠앤컬쳐] 런던에는 하이드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그린 파크, 켄징턴 파크 등 크고 작은 공원들이 많다. 그중 버킹엄 궁전 바로 옆 그린 파크(Green Park)는 넓이가 축구장 약 26개에 해당하는데 다른 공원에 비해 규모가 작고 수수하다. 그런데 공원 이름에 ‘푸른’(Green)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있다. 공원이면 당연히 푸른 잔디와 푸른 나무들이 있는데 왜 새삼스럽게 이런 수식어를 붙였을까?

그린 파크는 주변의 하이드 파크나 세인트 제임스 파크 같은 다른 공원들과는 달리 연못이나 분수도 없고 알록달록한 꽃장식도 거의 없는 그야말로 오로지 푸른색 일색의 공원이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그린 파크는 영국식 정원의 전형인 셈이다. 자연을 기하학적인 건축처럼 보이게 하는 화려한 이탈리아식 정원이나 프랑스식 정원과는 달리 영국식 정원은 자연을 가능한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다. 이 공원에서는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꽃장식이 없는 수수한 그린 파크
꽃장식이 없는 수수한 그린 파크

1749년 4월 27일 영국왕 조지 2세(1683~1760)는 이 공원에서 대대적인 불꽃놀이 축제를 개최했다. 이것은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이 끝난 것을 경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전쟁은 1740년 오스트리아에서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에 오르자 이에 반기를 든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가 지배하던 슐레지엔을 공격함으로써 발발했는데 나중에는 이해관계가 얽힌 강대국들 간의 대대적인 싸움으로 번졌다. 조지 2세는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1743년에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지속된 이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가 1748년에 독일 아헨에서 평화조약이 조인됨으로써 끝났다.

한편 조지 2세는 독일 하노버 출신의 영국왕 조지 1세(1660~1727)의 아들로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다. 그는 선왕이 그랬던 것처럼 런던보다는 독일 하노버에 있는 날이 더 많았지만 평화가 찾아온 것을 런던에서 한번 보란 듯이 크고 멋지게 경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리하여 다음해 대대적인 불꽃놀이 축제를 계획했고 이때 연주할 음악을 헨델에게 의뢰했던 것이다.

본 행사에 앞서 1749년 4월 21일에는 템즈강 남쪽 복스홀 가든에서 최종 리허설이 있었다. 리허설 관람이 무료가 아니었는데도 12,000명이 넘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바람에 당시 템즈 강의 유일한 다리 런던 브리지가 완전히 마비되어 마차들이 3시간 동안 꼼짝달싹 못 했다고 하니 런던 역사상 처음으로 교통체증이 발생했던 셈이다.

그린 파크 쪽에서 본 버킹엄 궁전
그린 파크 쪽에서 본 버킹엄 궁전

마침내 4월 27일, 수많은 시민이 몰려든 그린 파크에서 본행사가 열렸는데 세르반도니(Servandoni)라는 이탈리아식 예명을 쓰는 프랑스 건축가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불꽃발사대를 겸한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는 사람들의 눈길을 크게 끌었다. 예포가 울린 다음 드디어 헨델이 지휘하는 100개의 관악기와 타악기에서 장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면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랑비가 내렸기 때문에 불발탄이 적지 않았고 불꽃이 잘못 터져 군인 몇 명이 부상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불꽃발사용 무대에 장식된 조지 2세의 조각이 갑자기 넘어지더니 무대 한쪽에 불이 붙었다. 축제는 난장판이 되었다. 하지만 64세의 노장 헨델이 지휘하는 음악공연만큼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작품의 제목은 <Music for the Royal Fireworks>. 우리말로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으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불꽃놀이 행사가 왕궁에서 있었던 것처럼 오해하기 쉽다. 또 혹자는 바로 옆에 버킹엄 궁전이 있으니 그렇게 번역해도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당시 버킹엄 궁전은 개인 소유의 별장이었다. 버컹엄 궁전이 왕궁이 된 것은 조지 2세의 아들 조지 3세가 이것을 매입한 1761년 이후이다. 따라서 이 곡의 제목을 굳이 정확하게 하자면 ‘왕실주최 불꽃놀이를 위한 음악’이라고나 할까? 한편 이 곡은 2002년 엘리자베스 여왕 즉위 50주년을 기념하여 버킹엄 궁전 정원에서 불꽃놀이와 함께 공연되었다. 이 경우라면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이 맞겠지만.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