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비텐베르크는 독일 작센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라이프찌히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길에 위치하는데, 인구는 약 4만 7천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지방 도시다. 이 소도시의 공식 명칭은 루터슈타트-비텐베르크(Lutherstadt-Wittenberg), 즉 ‘루터 도시 비텐베르크’이다. 비텐베르크 시내 안에 들어서면 이곳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 놓은 종교개혁의 진원지라는 사실이 전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다.
비텐베르크의 심장부는 시청사 앞 광장 마르크트플라츠(Marktplatz 시장광장). 이 광장 중심에는 마르틴 루터의 동상이 시청사 건물을 배경으로 세워져 있고 광장 한쪽에는 그의 동료 종교개혁가 멜란히톤의 동상도 보인다. 이 광장에는 마르틴 루터와 매우 가까웠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Lucas Cranach)의 집도 있다. 그는 작센의 선제후 프리트리히 현공의 궁정화가로 오랫동안 비텐베르크에서 활동했으며 그의 아들 중 하나는 비텐베르크 시장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루터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가 그린 여러 점의 정교한 초상화 덕분이다.
이 광장에서 서쪽 비텐베르크성(城)으로 연결되는 길 슐로스슈트라세(Schlossstrasse)가 끝나는 곳에는 루터가 이따금씩 설교했던 비텐베르크성 부속 교회의 원통형 첨탑이 시선을 끈다. 이 교회 안에는 루터와 멜린히톤의 묘소가 안치되어 있다. 원통형 첨탑 상부에는 큼지막한 글씨 <Eine feste Burg ist unser Gott>가 마치 자신감에 찬 홍보문구처럼 둘러져 있는데 다름 아닌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이다. 이 제목의 찬송가는 프로테스탄트를 상징하는 곡으로 우리나라 개신교 찬송가의 585장이다. 가사는 루터가 1527~1529년에 쓴 것이고, 곡도 그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비텐베르크성은 프리트리히 현공의 궁정이었으나 19세기에 병영으로 사용되면서 성의 원래 특성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이 성에 부속된 교회는 루터가 살던 시대의 모습을 대부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이 교회의 북쪽 출입문에 라틴어로 된 <95개조 논제>를 게시했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 건축공사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행위를 비판한 이 항의문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된 다음에는 인쇄되어 독일 전역에 널리 퍼져나갔고 루터의 동조자들이 여기저기서 생기기 시작했다.
루터의 행동은 당시 교황의 권위에 대하여 정면으로 도전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1520년 루터에 대한 60일간의 근신을 명하는 교황 레오 10세의 파문 교서가 독일에서 공포됐다. 하지만 루터는 파문교서 사본과 교회 법전들을 비텐베르크에서 보란 듯이 불태워버렸다. 다음해 봄 루터는 보름스 제국의회에 소환되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오로지 성경만 따를 뿐이라면서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루터는 이단자로 몰려 추방되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다행히도 강력한 후원자 프리트리히 현공이 그에게 자신의 바르트부르크성을 도피처로 제공했다. 루터는 그곳에서 1년 가까이 숨어 지내면서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는데 오로지 성직자의 독점물이었던 성경이 쉬운 말로 번역되자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처음부터 종교개혁의 기수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95개조 논제>를 통해 학자들과 방종이라는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려 했다. 그는 1514년부터 시 교회에서 죄, 회개, 구원을 주제로 2년 동안 수없이 설교했는데, <95개조 논제>는 그것들에 대한 오랜 연구의 결과였다. 그런데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던 교회의 적폐에 대해 항의하는 ‘대자보’였다. 그런데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종교개혁’이라는 격동의 시대의 서막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그가 <95개조 논제>를 게시했던 목재문이 있던 자리에는 현재 <95개조 논제>로 장식된 청동문이 세워져 역사적인 순간을 증언하고 있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