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ora_Giuseppe Arcimboldo(1591추정)
Flora_Giuseppe Arcimboldo(1591추정)

 

[아츠앤컬쳐]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1527~1593)는 이탈리아 화가로 꽃과 같은 물체들을 조합하여 인간의 얼굴처럼 보이게 한 정교한 정물화 형식의 풍자적인 혼합 초상화를 그린 작가로 유명하다. 아르침볼도는 1527년 밀라노(Milano)에서 태어나 프라하의 합스부르크 궁정에서 주로 활동하였다. 그는 신성 로마 황제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II)와 루돌프 2세(Rudolf II)의 궁정화가로서, 상당한 학식을 갖춘 다재다능한 화가였다고 한다.

그는 기괴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대담하게 해석하여 작업화하였다. 그는 꽃을 비롯한 식물들을 정성껏 배치하여 전통적인 회화의 주제인 초상화를 정물화와 같이 표현하였다. 아르침볼도의 그림들은 당시에 무시받던 장르인 정물화를 고상한 장르로 여겨진 초상화와 교배시킴으로써 기존 질서를 전복시켰다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사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더라도 평범치 않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신비로움을 넘어 기괴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실제 그의 그림에 내재된 뜻이 어찌 되었건 자연 속에 이미 존재하는 사물들을 이용해 전혀 새로운 것으로 재해석하고 유희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가로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

화가로서의 아르침볼도의 전문 분야는 소위 합성된 머리, 즉 비인격적 요소로 사람의 머리를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도서관의 사서는 책으로, 요리사는 주전자와 프라이팬 또는 칼과 포크로, 가을은 과일로 의인화했다. 이 같은 닮은꼴이 궁정에서는 큰 즐거움의 원천이 되었는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수수께끼이기도 했으며 당대의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궁정 전체가 배를 잡고 웃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만은 아니고 아르침볼도의 평범치 않은 아이디어에서 야기된 다양한 만족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베르툼누스(Vertumnus)>이다. 계절의 변화를 관장한 신으로 ‘변화한다’는 뜻의 단어 ‘베르테레(vertere)’에서 파생된 신의 이름이다. 농경사회에서 수확을 관장하는 베르툼누스는 경외로운 신 중 한 명이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지만, 실은 황제를 과일과 채소로 표현해 신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아르침볼도의 작품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의 공간이다. 그는 누구도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척해 나갔다. 아르침볼도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이해해기 시작한 이들은 20세기 초의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꿈의 세계나 몽상의 세계, 또 있을 수 없는 상황을 그림으로 그리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에게 아르침볼도는 상상력의 근원으로서 그의 작품을 모방한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특히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1887~1968)이 야채와 벌레를 적당히 배치시킨 다음 사진으로 찍어 완성한 작품인 <죽은 조각(Sculpture-morte)>(1959)은 역시 자연물을 통해 사람의 두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아르침볼도의 기법을 계승하고 있다.

Vertumnus_Giuseppe Arcimboldo(1591)
Vertumnus_Giuseppe Arcimboldo(1591)

최근 인공지능이 이러한 기존의 작품들을 학습해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산출물을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이런 것에 대한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아르침볼도의 작품들을 학습하고 상당히 유사하지만 기존 작품과는 다른 과일과 채소로 사람들의 얼굴을 표현한다면 이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을까?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대규모 데이터셋(Data Set)에 기반한 딥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활용하여 이용자가 요구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제시하는 AI 기술이다. 2022년 11월 공개된 ChatGPT를 비롯하여 Gemini, Stable Diffusion 등 생성형 AI는 인간의 창작물과 유사한 수준의 결과물을 산출해 내고 있다. 가령, ChatGPT는 영화 각본을 써 내려가고, 감독처럼 카메라, 배우 위치와 표정, 조명 활용 방법을 제시한다. RadioGPT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하여 방송 대본을 자동으로 생성하고 스스로 음성을 만들어 내 내레이션을 진행하기도 한다.

현행 「저작권법」에서는 생성형 AI 산출물의 저작물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생성형 AI 산출물에 수정·증감 또는 편집·배열 등의 작업을 통하여 인간의 창작성이 부가된 경우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저작물성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생성형 AI 산출물들을 선택하고 배열 또는 구성한 것에 창작성이 있으면, 편집저작물로서 저작권이 인정될 수도 있다.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발생에 관한 요건으로 저작권 등록 행위가 필수는 아니지만, 생성형 AI가 산출한 부분이 무엇이고, 저작권자가 창의적으로 추가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구분하여 저작물을 등록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이 생성형 AI 산출물에 인간의 창작성이 부가된 경우 내지는 생성형 AI 산출물에 대해서도 저작물성이 인정되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이와 같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저작물이 기존의 저작물과 같거나 유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다만, 「저작권법」은 이와 같은 저작권 침해에 관해 구체적인 조항을 두고 있지 않고 판례를 통해 요건을 구체화하고 있으므로 침해 여부도 판례를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

저작권침해소송에서 원고(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자)는 저작권 침해의 요건을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요건은 크게 원고가 주장하는 자신의 피침해대상이 저작물인 점, 원고 자신이 저작권자인 점, 그리고 피고(생성형 AI의 저작물성이 기존 저작물과 같이 인정되는 경우를 가정한다면, 이를 활용하여 저작물을 만든 자)가 원고의 저작권 등 권리를 침해한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저작권 침해 행위에 해당하려면 피고가 원고의 저작물에 접근하여 원고의 저작물과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작품을 제작하는 등 「저작권법」이 정한 유형의 행위 방법으로 이용하였어야 한다.

그러나 생성형 AI 산출물이 기존 저작물과 같이 약간의 유사성만 있다고 모두 저작권 침해로 본다면 생성형 AI를 활용한 활동이 과도하게 제약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어느 범위에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할 것인지가 핵심적인 판단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생성형 AI 산출물이 기존 저작물을 학습하여 새로운 저작물을 생성했다고 하더라도 기존 저작물에서도 실제 보호받는 표현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이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이에 대하여는 저작물의 종류마다, 침해의 방법 등 사안의 성격마다 각각 고려하여야 할 요소가 많으므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글 | 이재훈
성신여자대학교 법학부 교수
변호사, 변리사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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