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주인공이 피자를 먹던 가게 ‘다 미켈레(Da Michele)’가 있는 피자의 고향 나폴리에 가면 한 집 걸러 피자가게를 볼 수 있다. 그 많은 가게에 사람들이 항상 가득한 것도 신기하다. 길에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차도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얼기설기 다니며 클랙슨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대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내가 베트남에 온 건지 이탈리아에 온 건지 모를 정도다. 시내 중심가인데도 불구하고 저녁에 가게 셔터를 내리면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고 택시 운전사는 뻔뻔하게 바가지를 씌워서 관광객들을 기겁하게 한다. 다만, 바가지를 쓰더라도 선을 넘지 않는 바가지라서 버틸 만하고 일반 서유럽에 비해 낮은 물가, 어디를 가더라도 어마어마한 문화 유산들을 볼 수 있기에, 삼사일만 적응하면 한때 번영했던 나폴리왕국의 영광이 가득한 도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여행객은 적응할 만하면 도시를 옮겨야 한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피자 말고 나폴리를 대표하는 걸 찾아보면 나폴리 민요가 떠오른다. 요즘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예체능 교육이 거의 사라졌지만 기억 속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배웠던 가곡들이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한국 가곡은 물론 독일 가곡 이탈리아 민요 중 한두 곡은 외우기도 했다. 이탈리아에 오니 새록새록 생각나는 민요들이 있는데, 보통 나폴리 민요 하면 우리나라의 아리랑 같은 작자 미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작곡자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된 노래들도 아니다.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지방을 여행하면서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나폴리 민요들의 스토리가 궁금해 좀 뒤져보았더니 재미있는 스토리들이 가득하다. 여기서 대표적인 몇 가지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이탈리아 나폴리 민요의 가사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가사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곡이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다. 소렌토는 나폴리에서 남쪽으로 50km 정도 가다 보면 나오는 휴양도시인데 정신없는 나폴리와는 전혀 다르게 잘 정돈되고 부유해 보이는 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특히 바다와 맞닿은 절벽에 지어진 특급 호텔들은 아름다운 오션뷰를 자랑하는데 그 중 ‘임페리얼 호텔 트라몬타노’는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하고 유서 깊은 호텔이다. 한때 이 호텔은 소렌토의 최고급 호텔이었고 유럽 전역의 저명한 시인, 음악가, 귀족과 왕족들이 줄을 서서 방문했고 장기간 머물며 소설과 시를 썼던 기록이 있다.
이 호텔의 일부는 이탈리아의 중세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예루살렘의 해방’을 쓴 유명 시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가 태어난 건물까지 포함하고 있어, 소렌토의 역사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871년 러시아 황제 알렉산더 2세의 아내인 마리아 알렉산드로브나는 약 200명의 수행원과 함께 소렌토에 와서 2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그동안 수많은 저명한 손님을 맞이했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마리아 대공비와 에든버러 공작의 약혼을 공표하여, 이 행사를 위해 호텔에 ‘임페리얼’이라는 칭호가 주어져 지금도 호텔 이름 앞에 임페리얼이 붙어 있다. 호텔을 다녀간 유명인을 열거하자면 괴테, 바이런, 월터 스콧 등이 있다.
이쯤 되면 무슨 칼럼이 호텔 광고 같다고 생각하겠지만 나폴리 민요의 대명사인 ‘Torna a Surriento’가 이 호텔의 테라스에서 작곡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긴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이다. 호텔의 주인인 굴리엘모 트라몬타노 주니어는 10년 이상 소렌토 시장을 역임하며 당시 이탈리아 총리를 호텔에 머물도록 초대했다. 그 관계 덕분에 소렌토에 우체국을 유치하는 약속을 받아냈고 총리가 로마로 돌아가도 이를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호텔에서 일하고 있던 ‘쿠르티스(G. B. De Curtis)’에게 작곡을 의뢰하면서 세계적으로 대 히트한 나폴리 대표민요가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나폴리에서 소렌토로 가기 위해 베수비오 화산을 지나다 보면 꼭 들려야 하는 유적지가 하나 있는데, 한때 로마의 권력가나 재력가들의 최애 휴양지였던 ‘폼페이’다. 폼페이는 AC 79년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로 최후를 맞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유적지로 발굴되면서 관광객들의 성지가 되었다. 폼페이 유물전은 대한민국에서도 흥행 보증 수표처럼 열리곤 한다. 이렇게 도시를 삼켜버린 무시무시한 베수비오산을 올라가는 케이블카 개통을 기념해 만든 곡이 ‘푸니쿨리 푸니쿨라(Funiculì, Funiculà),1880 by Luigi Denza’다. 친구들 간에 농담으로 시작해 장난처럼 만들어진 곡은 큰 성공을 거두고 악보만 백만 장 이상 팔렸다. 요즘 세상에도 뭐든지 백만 부를 판다는 게 어려운데 19세기 후반의 인구를 생각할 때 이는 어마어마한 흥행이 아닐 수 없다. 이 노래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곡에 사용했는데, 긴 소송 끝에 이 곡의 작곡자 덴차는 슈트라우스로부터 로열티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기에 정보 부족으로 림스키코르사코프 역시 이 노래를 나폴리 전통민요로 생각해 그의 작품 ‘나폴리 노래’에 멜로디를 사용기도 했다.
이런 나폴리 민요 저작권 문제는 최근까지 ‘오 나의 태양(O sole mio), 1898 Eduardo di Capua’을 두고도 발생했다. 이 곡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를 먼저 소개하자면, 1920년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탈리아 국가 악보가 밴드에 전달되지 않아 밴드 구성원 모두가 아는 멜로디를 임기응변으로 연주했는데 바로 이 ‘오 솔레 미오’였다. 그 정도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프레도 마추끼(Alfredo Mazzucchi)라는 작곡가의 딸이 카푸아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구매한 18곡 안에 있던 멜로디를 다시 편곡해 ‘오 솔레 미오’를 썼다는 주장을 뜬금없이 들고나왔는데 법원에서 정식으로 인정되어 마추끼 작곡가 사망(1972년) 이후 70년이 되는 2042년까지 저작권이 살아있는 상태다. 그의 딸이 지금도 유튜브 수익을 받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초여름이 되면 전 세계 관광객들이 이탈리아 남부로 몰려든다. 깎아지는 해안 절벽에 만들어진 도시들과 마을들은 보기만 해도 자연과 문명의 조화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장소 버킷리스트에 이름을 항상 올리고 있는 특별한 장소다. 특히 포지타노를 거쳐 아말피까지 이어지는 절벽 드라이빙 코스는 양방향으로 차가 다니기 힘든 좁은 길에 일반 차량과 버스가 함께 다니면서 운전하기 위험한 장소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그런 고생을 감수하면서도 어마어마한 관광객이 몰려드는 만큼, 이탈리아 남부인데도 어마어마하게 높은 물가와 눈을 의심케 하는 호텔 가격 때문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환경은 너무 아름다운데 거기 사는 사람들의 물욕은 그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듯하다. 이게 싫으면 안 가면 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이 세상은 수요공급의 법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 준 장소이기도 하다.
초여름 아침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호텔 창문을 열고 끝없이 펼쳐지는 지중해 바다에 떠 있는 하얀색의 수많은 요트의 물결을 보며 나폴리 민요 ‘오 솔레 미오’를 흥얼거리는 동안, 통장 잔고 바닥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최면에 걸려버린 건 아말피 해변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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