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마술피리의 내용은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타미노가 운명의 여인 파미나를 만나 온갖 시험과 시련을 마술피리의 힘을 빌려 극복하고 사랑을 이룬다는 단순한 내용이다. 비교적 단순한 내용과 코믹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고 대사와 노래가 번갈아 가며 이야기의 진행과 예술적 감상이 동시에 가능하다.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캐릭터들 때문에 오페라 입문자들이나 어린이들도 편하게 즐기다 보니 전 세계 오페라 공연 순위 1, 2위에 오르곤 한다.

오페라의 유쾌한 가벼움을 극복하고 고통의 상황 속에서 생애 마지막 작품을 제작했던 내면의 의도를 살리고자 하는 연출가들의 고민은 상당하다. 매번 연출가들은 뻔한 이야기를 극복하고자 여러 시도를 하는데 오페라 대본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남들은 떠올리지 못한 이야기를 그 안에서 끌어 내고자 하는 시도를 독일 극장들의 프로덕션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다. 자국어로 올려지는 작품이기에 관객들의 반응 또한 즉각적이다. 문제는 관객들이 연출자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인데 너무 파격적인 시도는 언제나 후유증에 시달리게 된다.

Magic flute_Frankfurt oper
Magic flute_Frankfurt oper

이번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 올라간 마술피리는 재공연이기에 어느 정도 완성도를 기대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함께한 관객들 역시 마술피리라는 유명 오페라에 대한 기대감으로 맨 앞쪽 자리를 예약해 앉았다. 아파트먼트에서 벌어지는 듯한 회전 무대를 배경 과감한 무대전환과 바턴에 조명 장치나 무대장치 하나 걸리지 않은 극장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거대한 공간에서 이리저리 돌아가는 무대는 성악가들이 마치 미로에서 관객을 찾아 헤매는 모습처럼 연출되었는데, 가끔 벽 뒤에서 노래해야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 착오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처럼 보였고 갑작스러운 정지 동작에서 조명 변화 역시 삐걱거렸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시즌 공연에서 보여지는 무대 스텝들의 피로감이랄까 아니면 우연한 사고였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테너의 컨디션 난조가 있었는데 성악가도 인간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는 게 당연한 건데 오페라가 끝나고 테너는 커튼콜에 등장하지 않았다. 왠지 어색함이 묻어나는 마지막 커튼콜 장면을 보면서 전통 있고 훌륭한 극장 시스템에서도 실수는 일어난다고 하는 일종의 웃픈 동질감도 느껴졌다.

이날의 오페라는 결국 한국과의 시차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지루했던 것인지 많은 관객의 평가는 좀 지루하고 졸렸다는 반응이다. 개인적으로는 특이한 무대전환과 비극에 어울릴 만한 조명 그리고 평상복 같은 무대의상을 보면서 나름 독특한 연출에 흥미를 느끼고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하고 감상했지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변사의 목소리로 모든 배역의 대사를 목소리 연기로 대체해버렸기에 짧아진 런닝타임이 유일한 장점이긴 하지만 배역들이 멈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대사는 오히려 오페라의 집중력을 저해했고 갑자기 극의 전개가 끊기는 효과를 주었다. 아무래도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 같은 대극장에서 실험되기에는 너무 위험을 감수한 프로덕션이었다.

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많은 공연을 보았던 지인 역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용을 잘 숙지하고 있는 관객들에게는 생략된 내용이나 복선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보였는데 꽉 찬 관객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수 소리는 이런 실험적 오페라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저력으로 대한민국에서 오페라 콘텐츠 제작자로서는 대단히 부러운 점이었다.

이번 오페라에는 한국인 주역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밤의 여왕 역할을 맡은 소프라노 김효영과 자라스트로 역을 맡은 베이스 심기완이었다. 워낙 한국 성악가들의 활약이 국제적으로 활발하다고 하다지만 이렇게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요즘처럼 한국 아티스트들을 국제무대에서 많이 볼 수 있던 적은 없었기에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30명의 관객이 한국에서 날아와 맨 앞자리에서 보고 있었기에 현지 음악가들과 관계자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과거 비엔나 신년 음악회를 위성 중계로 보다 보면 일본인들이 기모노를 입고 연주회에 앉아있는 모습을 시청하면서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한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맨 앞에서 감상하는 모습이 격세지감이다.

실제로 다음날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방송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대지의 노래'를 ALTE OPER 공연장에서 감상했는데 이날 방송촬영이 있었는지 많은 카메라맨이 무대에까지 앉아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카메라에 잡히는 한국 관객들은 왠지 애국하는 마음으로 좀 더 집중해 공연을 감상했는데 실제 공연에 참석해 처음 듣는 교향곡이었음에도 공연 후기가 좋았다.

말러의 기존 교향곡들과는 완전히 다른 색채의 곡으로서 베토벤이 9번 교향곡 '합창'을 작곡했듯 말러 역시 많은 고난의 시기에 작곡한 곡으로 성악가를 등장시켜 테너와 바리톤이 번갈아 가면서 6곡을 노래한다. 테너의 화려한 등장과 대비적으로 바리톤의 정적이면서도 다양한 표현을 보여주는 긴 마지막 곡으로 끝을 맺는데 동양적 색채 음악까지 다양한 시도가 느껴지는 곡이었다. 그저 엄숙하기만 한 말러작 느낌에서 테너의 취한 듯한 모습 속에 장난기가 어린 부분까지 느낄 수 있게 표현했다.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상임지휘자 ALAIN ALTINOGLU의 지휘로 리처드 터커 어워드 수상자 테너 CLAY HILLEY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바리톤 SAMUEL HASSELHORN이 함께했는데 트럼펫 같은 바그너 테너의 모습과 서정적인 바리톤 목소리의 대비를 통해 만들어낸 훌륭한 공연이었다. 2024년 6월 14일 ALTE OPER에서 올려진 말러 심포니 ‘대지의 노래’를 아래 QR코드를 통해 공연 실황과 한국 관객들의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다.

Frankfurt Radio Symphony Live: Alain Altinoglu with Þorvaldsdóttir & Mahler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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