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소장품 기획전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017~18, 캔버스에 수채 물감, 112×145.5cm(15)
전현선, 나란히 걷는 낮과 밤, 2017~18, 캔버스에 수채 물감, 112×145.5cm(15)

 

[아츠앤컬쳐] 한국 근현대 미술가 34명의 수채화 작품 10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에서 수채화 소장품만 단독 장르로 구성한 《수채: 물을 그리다》 기획전이다. 이중섭, 장욱진, 박수근, 박서보 등 이미 잘 알려진 우리나라 대표 미술가의 수채 작품뿐만 아니라, 수채화 장르에서 남다른 작품성을 보여준 이인성, 서동진, 서진달, 배동신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류인, 문신 등 조각가의 작품도 흥미롭다.

수채화는 미술사적으로도 완결성과 완전성을 갖춘 하나의 단독 장르로 인정받아 왔다. 하지만 실제 현대 미술계나 미술시장에선 다른 평면 회화 장르에 비해 홀대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마도 제대로 된 기획전이나 대중 친화적인 수채화 알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이 주요 요인으로 짐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의 《수채: 물을 그리다》 기획전이 수채화의 새로운 면모를 되돌아볼 좋은 계기가 되리라 기대한다.

이중섭, 물놀이하는 아이들, 1941, 종이에 펜, 수채 물감, 14×9cm
이중섭, 물놀이하는 아이들, 1941, 종이에 펜, 수채 물감, 14×9cm

물의 투명성, 유연한 조화로움, 스며들기, 번지기, 즉흥적 어우러짐 등 수채화가 지닌 특별한 기법이나 조형미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100여 점의 작품들이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동안 습작이나 드로잉의 관점에서 유화 전 단계 정도로 평가받아왔던 수채화의 선입견을 불식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수채: 물을 그리다’라는 전시명에서 보여주듯, 다양한 수채의 용법적 설명보다는 수채화의 가장 특징적인 속성인 물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시는 총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수채화는 근대기 초 서양화의 도입으로부터 그 출발을 알렸고 새로운 매체와 함께 새로운 시각성의 도입이 발현되었다. 하지만 수채화를 구성하는 종이, 붓, 물이라는 재료의 친연성은 수묵화의 전통과 직간접적인 영향 안에서 활발하게 꽃피우게 된다. 수채화의 1세대로 일컬어지는 대표 작가들과 그 전통을 통해 이어 온 근대기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박서보, 묘법 No.355-86, 1986, 캔버스, 종이에 수채 물감, 194×300cm
박서보, 묘법 No.355-86, 1986, 캔버스, 종이에 수채 물감, 194×300cm

두 번째는 사생을 중점에 둔 자연환경의 묘사뿐만 아니라 내적 성찰과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수채화 매체를 사용한 작가들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표현주의,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같은 미술사적 형태와 형상적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이면서도 수채의 투명하고 번지는 형질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추상적 형태이다. 우리 화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쳤던 단색화 경향의 작품군은 수채화의 영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추상주의와 유럽 대륙에서 활발하게 이행됐던 앵포르멜 경향의 작품, 그리고 물성을 강조하는 모노하 형식의 작품은 단색의 화면을 구성하면서 명상적이고 수행적인 태도를 선보인다.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34.5×44cm
이인성, 계산동 성당, 1930년대, 종이에 수채 물감, 34.5×44cm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는 우리 미술관이 최초로 수채화 장르만으로 단독 구성한 전시”라며, “근대기에 도입된 수채화의 특징은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온 과거와 단절되지 않는 영속된 지점에 있었고, 오늘까지도 그 맑음의 정신은 이어오고 있다. 수채화가 지닌 포용과 어울림의 특성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되길 희망한다”라고 밝혔다.

MMCA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5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상태
MMCA 소장품 기획전 《수채, 물을 그리다》 전시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2025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김상태

한편, 이번 전시와 연계하여 ‘2층 보이는 수장고’에서는 최근 수채 소장품 중 주목받는 젊은 현대 미술가 전현선의 작품 <나란히 걷는 낮과 밤>도 만나볼 수 있다. 총 15폭으로 구성된 초대형 수채 회화작품으로 설치작품 수준의 특별한 아우라를 뽐낸다. 전시는 9월 7일까지 진행된다.

 

글 ㅣ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