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aac OZ와 Peter OZ의 탈정체적 조형 실험 2인전
[아츠앤컬쳐] 현대미술에서 작가의 이름은 더 이상 단순한 서명이 아니다. ‘Isaac OZ & Peter OZ’가 참여하는 이번 호리아트스페이스의 2인전 《Decoy》(6.19~7.4)은 아주 독창적인 협업 방식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창작 주체의 이름 자체를 뒤흔들며, “작가란 누구인가, 협업이란 무엇인가”를 근본부터 되묻는다. 얼핏 동명이인으로도 보이는 두 작가는 실재와 가상을 오가는 ‘페르소나’로서 서로를 비추고 간섭하며, 자아 분리와 재구성의 실험을 보여준다. 실제로 ‘오즈의 마법사’의 동명 ‘오즈(OZ)’를 공유한 새로운 개념의 협업 작품이다. 작품의 기획과 개념 설정, 메인 페인터 등 여러 역할의 개념에 따라 업무 분담한 예명(藝名)의 작가이다.
우선 아이작 오즈(Isaac OZ)의 작품은 마치 “화가들은 태생적으로 연금술사”였다는 역설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캔버스 위에 올려진 물감의 물리적 무게는 극히 미미하지만, 시장에서는 때로 ‘황금’에 필적하는 가치를 부여받는다. 작가는 이 지점을 파헤치며, 완성된 작품에서 캔버스 무게를 제외한 순수한 물감의 무게를 정밀 전자저울로 계량하고, 그 무게를 현재 금 시세로 환산해 작품 가격을 산출한다는 개념을 적용했다. 관객은 ‘평면 회화의 가격은 면적에 정비례’한다는 미술시장의 기존 관습을 의심하게 되고, 물질과 가치의 전도를 체험케 된다. 이는 물질(실재)로부터 상징적 가치가 발현되는 순간을 재연하는 현대적 연금술에 비유할 만하다.
또한 최근 신작인 〈퓨즈(Fuse)〉 시리즈는 ‘99%의 사라지는 작가들’에 대한 오마주이다. 아이작 오즈는 ‘성공한 1%’ 뒤에 가려진 99%의 무명 화가들을 재소환한다. 작가는 원로 화가였던 아버지의 미발표 작품을 비롯해,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흩어진 미술대학 졸업생들이 남긴 페인팅을 수집해 새 화면으로 전환시킨다. 가령 기존 캔버스 작품에 아크릴 케이스를 씌운 후, 가장자리에 창문 프레임을 그리고, 중앙에는 건축 도면에서 투명 재료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사선 기호만을 남긴다. 물질적 덧칠 대신 상징적 부호를 삽입함으로써, ‘옛 그림 안으로 들어오는 새로운 빛’이라는 은유를 형성해 주는 듯하다. 버려질 운명에 있던 그림은 아이작 오즈 스타일의 ‘퓨즈(Fuse)’라는 개념적 가공을 거쳐, ‘창작-소유-가치의 선순환 구조’ 속에서 재탄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피터 오즈(Peter OZ) 작가는 ‘실체와 그림자의 역할 바꾸기’를 작품화한다. 피터의 〈The Shadow of a Shadow〉 시리즈는 3D 프린트와 ‘무소블랙’이 만든 무표정의 산물이다. 실체는 3D 프린터로 제작한 미니어처 의자에 에어브러시로 도포한 무소블랙(광흡수율 99%)을 입혀 ‘빛 = 정보’의 완전한 부재를 구현한다. 반면 그림자에는 수작업으로 채색해 개성을 심는다. 따뜻한 붓질의 온기가 ‘그림자의 독립선언’을 시각화해 주는 셈이다. 이 과정으로 실체와 그림자 간 역전 효과가 도모된다. 이처럼 피터의 작업은 ‘실체가 그림자를 낳는다’는 관념을 전복하면서 본질(성)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선물해 준다.
서구 미술에서 ‘협업’은 기획과 계약의 문제로 다뤄졌다면, 전통적으로 동양철학의 관계성은 자연스러운 상호 생성에 주목했다. 빛이 스치면 그림자가 생기고, 그 그림자는 실체를 부른다. 그 사이에 서 있는 우리는 무엇을 ‘본다’고 말할 수 있는가. 굳이 장자의 ‘호접몽(胡蝶夢)’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이번 《Decoy》 전시 역시 Isaac OZ와 Peter OZ 중 누구도 ‘과연 실체가 누구를 꿈꾸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은 끝내 확언하지 않은 질문형이다. 두 작가는 해답 대신 질문이 거울처럼 무한히 반사되는 공간을 구축하고, 관람자는 그 거울들 사이에서 자기 존재론적 위치를 재배치하게 된다. 결국 ‘두 오즈의 마법’은 환상을 넘어 ‘자아 너머로 향하는 철학적 통로’를 보여준다. 관람자는 보는 행위 자체도 창조적 행위임을 깨닫고, ‘작품-작가-관람자’가 삼위일체로 새로운 현실을 공동 경험하게 된다.
아이작 오즈(Isaac OZ)와 피터 오즈(Peter OZ). 예술 분야 중 순수미술(현대미술)만 대문자 ‘I’의 유아론적 사고가 통용되고 있다. 대문자 ‘I’는 ‘나’를 뜻하며 정체성(identity)의 첫 글자 ‘I’이다. 또한 프로이트의 이드(id)의 ‘I’이다. 아이작 오즈(Isaac OZ)는 친화력으로써 나(I)를 극복하고자 하는 협업작업 프로젝트이다. 아이작 오즈는 나(I)라는 정체성과 나(I)라는 이드를 죽여서, 미술의 신화를 거부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아이작의 페인터는 김효중 작가다. 피터 오즈(Peter OZ)는 아이작 오즈와 패밀리다. 아이작은 물감을 금과 같은 가치로 만드는 연금술이 주제라면, 피터는 대상과 그림자의 역할 바꾸기에 작업의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모두 ‘오즈’란 성을 가지는데 오즈는 ‘결핍을 소통으로 충족’시키는 역할을 한다. 피터와 아이작의 페인터는 개별적으로도 다수의 전시 경력을 갖고 있다.
글 ㅣ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