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회화를 두려워 하랴, 회화 그 너머를 향한 김남표의 질문

김남표, Instant Landscape-Aewol sea#10, 2023, Oil on canvas, 193.9x259.1cm
김남표, Instant Landscape-Aewol sea#10, 2023, Oil on canvas, 193.9x259.1cm

 

[아츠앤컬쳐] 언제부턴가 회화는 낡았고, 조용하며, 전통의 안에서 멈춘 매체로 오해받곤 했다. 빠른 속도와 자극을 좇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붓을 들고 화면 앞에 서는 일은 어쩌면 가장 느리고 아날로그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김남표는 묻는다. “누가 회화를 두려워하랴.” 이 도발적인 전시 제목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회화가 여전히 유효하고, 더없이 정직하며,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는 가장 깊은 방식임을 말하는 선언이자 회복의 문장이다.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열리는 이번 김남표 초대전은 20년 넘게 회화라는 장르에 천착한 실험적 흔적의 결정체를 한자리에서 손쉽게 조망하도록 구성됐다. 그의 화면은 거칠고 투박하며 때론 미완처럼 보이지만, 화려하지 않다. 덜 다듬어진 감각 안에 진짜 감정이 숨 쉬고 있다. 화면 속에 남겨진 붓질과 물감의 뭉침, 번짐, 말라가는 속도는 작가가 ‘말하지 않고 말하는 방식’이다. 오히려 그 침묵의 언어가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김남표, Himalaya#3, 2024, Oil on canvas, 162.2x390.3cm
김남표, Himalaya#3, 2024, Oil on canvas, 162.2x390.3cm

김남표의 회화는 ‘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빛의 색채, 겹친 레이어, 반복되는 행위의 흔적들은 하나의 방향보다 복수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 자국은 무엇의 잔상인가?”, “이 색의 끝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정해진 의미 없이, 보는 이의 경험과 감각으로 완성되는 열린 구조. 그것이 김남표 회화의 본질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박은경 큐레이터는 김남표 작가에 대해 “단지 회화를 잘하는 화가가 아니라, 예술가로서의 태도와 정신을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 깊이 인상적이었다”라고 강조한다. “요즘은 예술 노동조차 가볍게 소비되거나, 창작의 본질마저 인공지능에 맡기려는 시대 흐름 속에서, 김남표 작가의 작업은 회화라는 고유한 언어가 여전히 유효하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감각과 사유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라고도 덧붙인다. 마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라는 격언을 김남표의 회화에서 읽어내고 있는 셈이다.

김남표, Aewol Sea Drawing#3, 2024, Water color on paper,  29x42cm
김남표, Aewol Sea Drawing#3, 2024, Water color on paper, 29x42cm

김남표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곤 한다. 회화는 대상이 아니라 거울이 되는 경험이다. 비추어 보아도 알 수 있는 심적 여백이 담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김 작가는 화면을 남겨둔 여백처럼 꽉 채우지 않는 이유는 ‘멈춘 붓질’ 사이로 일부러 감춰 놓은 시간의 레이어를 관객이 마주하게 되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 전시는 단지 작가의 회화적 성과를 보여주는 자리를 넘어선다. 회화라는 언어가 어떻게 시대를 견디고, 질문을 멈추지 않으며,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예술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한 작가의 깊은 사유의 기록’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김남표는 다시 묻는다. “당신에게 회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오히려 되묻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회화는 해답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우리의 끝없는 질문이다.” 프랑스 작가 장 뒤뷔페의 말처럼, 김남표의 작업은 그런 질문을 멈추지 않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풍경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감각은 언제나 달라진다”라는 김남표 작가의 말이 회화 속에 잠든 감각을 다시 일깨워준다. 제주의 바다, 히말라야의 산맥, 파리에서의 수채 드로잉 등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마주한 김남표의 감각적인 풍경은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에서 다음 달 13일까지 만날 수 있다.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김남표 개인전 전경.
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김남표 개인전 전경.

 

김남표(b.1970)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학부(B.F.A)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M.F.A) 학위를 받았다. ‘누가 회화를 두려워 하랴’(성남큐브미술관 반달갤러리, 성남, 2025), ‘UNMASK’(아트비앤, 서울, 2024), ‘The Hole’(옵스큐라, 서울, 2024), ‘안나푸르나:회화적 리얼리티’(OKNP, 부산, 2024), ‘전해지지 못한 진심의 최후’(나마갤러리, 서울, 2023), ‘Origin, Instant Landscape’(아이프라운지/호리아트스페이스, 서울, 2022), ‘제주도를 그리다’(교보아트스페이스, 서울, 2022), ‘Instant Landscape – Goosebumps’(가나아트센터, 서울, 2017), ‘Instant Landscape’(가나아트 뉴욕, 미국, 2009), ‘Instant Landscape’(갤러리 현대-윈도우 갤러리, 서울, 2007) 등 국·내외에서 20회 이상의 개인전과 60회 이상의 단체전을 비롯하여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아트센트럴(홍콩), KIAF(서울) 등의 국제아트페어에 참여하였다. 전국대학미전 대상(1997), 창작예술협회 공모전 금상(1998)을 수상하였다.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성남문화재단, 수원아이파크미술관, 대구미술관, 한국수력원자력 등 기관 및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글 ㅣ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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