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정통칠보 맥 잇는 그랜드 마스터 이수경의 칠보미학
[아츠앤컬쳐] 칠보(七寶)는 ‘여러 금속류의 재료에 유리질을 녹여 붙이는 과정을 거쳐 장식’하는 공예기법이다. 이미 삼국시대 금제 장신구에서 처음 나타날 정도로 역사도 깊다. 사용되는 재료의 열팽창률·수축률·융점 등의 특성을 잘 활용하면 다양한 색채를 표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색채의 오묘함과 찬란함을 연출하는 색채 구사의 창작성이 빛을 발한다. 우리나라 전통 칠보 공예기법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대한민국 칠보 명인 이수경 작가의 전시가 삼청동 오매갤러리(대표 김이숙)에서 열린다.
60여 년의 경력을 지닌 이수경 작가는 ‘한국예술문화명인’으로도 선정됐을 만큼 칠보 부문에서 ‘그랜드 마스터’로 이름나 있다. 특히 100가지가 넘는 색깔을 개발한 남다른 의지를 바탕으로 남편과 함께 설립했던 칠보공예회사 남정 클로이수(Cloisoo)는 현재 아들 김홍범 대표가 대를 이어 연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 칠보기법의 전통미에 현대적 디자인을 결합해 새로운 가치를 구현해 낸 국가대표급 브랜드로 키워냈다. 이수경의 작품을 김두겸 울산시장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 담맘, 태국 방콕 등 3개국 4개 도시를 방문했을 때 해외사절단 대표 브랜드로 소개한 것도 대표적인 에피소드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색이 없는 ‘영원성과 오묘한 색의 조화’가 칠보 미학의 남다른 매력이다. 궁중에서 쓰던 칠보 장신구의 범주를 넘어 현대적 일상의 주얼리, 테이블 웨어, 아트워크 영역까지 확장한 이수경의 칠보는 인고의 제작 공정을 거쳐 만나게 된다. 금속판에 가느다란 은선을 섬세하게 붙이며 형태와 공간을 만들고, 그 작은 공간에 그녀만의 감성으로 선택된 색들과 유약을 입힌 후, 800~900도가 넘는 열을 여러 번 극복한 결과이다. 일련의 과정들은 수많은 칠보 알에서 또 다른 독립된 자아를 찾듯, 수행에 견줄만한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칠보란 제 삶이자 사랑, 희망이며 인내와 고독이자 신념입니다. 삶에 대한 믿음의 발자국이 된 칠보의 생명력은 아름다운 색상의 조화에서 비롯됩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작업을 통해 표면의 색과 내면에 살아 숨 쉬는 에너지가 만나 영원성의 혼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칠보 작업입니다. 마치 한 생명체를 얻기 위해 쏟는 에너지가 한데 모인 우주와도 같습니다. 그렇게 조화를 이룬 색색의 알들은 일정한 패턴으로 또는 자유로운 음률로 밤하늘의 은하수가 되고, 봄날에 만발한 꽃잎같이 온 세상에 사랑과 희망, 인내와 고독의 이유를 전하게 됩니다.”
이수경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며 음악을 즐겨 듣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고전음악과 문학을 아주 좋아했던 습관은 매일 새벽마다 기도와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도록 이어졌다. 특히 베토벤의 9번 교향곡에서 작품의 큰 영감을 받곤 한다. 인류 최고의 음악으로 칭송받는 베토벤의 마지막 걸작 9번 교향곡은 ‘합창’이나 ‘환희의 송가’로도 큰 사랑을 받는다. 극과 극은 통하듯, 유구한 전통미의 정수인 칠보 미학 완성에 서양의 클래식 정통 음악의 감흥을 조화시킨다는 발상이 매우 흥미롭고 독창적이다.
가령 작품 <오아시스> 경우 한가운데의 지휘자를 둘러싸고 무려 1,700명이 훌쩍 넘는 연주자들의 음률이 자아내는 웅장한 교향곡을 들려주는 것 같은 환상을 선사한다. 또한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인다라망(因陀羅網) 세상 구성원리’의 묘미를 만난 듯하다. 그래서 제목처럼 사막의 생명과 희망의 원천을 염원하는 인간의 가장 순결한 욕망도 읽힌다. 다음으로 <문자도 信(신)> 작품은 이수경 작가 특유의 전통미 해석이 돋보인다. 두 마리의 새가 연서를 주고받는 장면으로 ‘信’ 글자를 해석한 점이 이채롭고 독창적이다. 작품 <사랑> 역시 전통적 재료기법을 활용한 현대회화의 조형적 구성미가 아름답다. 이수경의 칠보 초대전은 이달 24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진행된다.
이수경 작가는 우리나라 칠보공예가 지닌 전통미의 우수성을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대표적인 명인으로 손꼽힌다. 오랜 세월 상류층만이 향유하던 칠보공예는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이은(李垠)의 비 이방자(李方子) 여사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실시한 전승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화됐다. 이수경 명인은 남편(김익선)과 함께 당시 이 여사에게 직접 칠보공예를 배운 제자이기도 하다. 그동안 문화예술인 여성 대상, 산업자원부 장관상, 문화관광부 밀레니엄상, 프랑스 명예 전시상, 제35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울시의회 의장상, 상공의 날 상공회의소 회장상, IDEA 우수상(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상) 등 국내외 각계에서 칠보 부문의 독창적 작품 세계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는 국내외 문화예술 행사에 초청되어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서도, 울산의 클로이수(남정칠보)를 통해 칠보의 현대적 브랜드 가치의 확장에도 힘쓰고 있다.
글 ㅣ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