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가 22인 기획전
[아츠앤컬쳐] 한국화 장르의 다양한 면모를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안국동 헌법재판소 뒤편의 나무모던앤컨템포러리아트갤러리가 주최한 이번 전시의 제목은 <Beyond the Surface : 층위 그 너머>이다. 제목에서 짐작되듯, 초대작가 22인의 작품들은 전통과 현대, 구상과 추상, 실재와 허상, 개인과 사회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동시대적 주제의식을 독창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동시대 미술의 감각은 더 이상 하나의 시선이나 표현만으로는 포착되기 어렵다. 전시의 부제목 ‘한국화가 22인의 감각과 사유 그 너머’처럼, 이번 기획전은 30대부터 60대까지 각기 다른 세대ㆍ매체ㆍ기법이 교차하며, 보이는 이미지의 외연(外延)이나, 내면의 감각적 사유 그 너머의 ‘층위’를 함께 탐색하는 자리로 마련된 것이다. 같은 주제나 소재라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 경우, 그 해석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작가적 특성이 간직된 작품별 성향이나 조형적 언어는 전시를 흥미롭게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한 축이다.
전시를 주최한 최은주 대표는 “제각각의 개별적 시선과 정서, 시간의 결이 켜켜이 배어 있는 작품들은 우리 삶 속의 다양한 표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번 전시를 통해 단순한 작품의 나열이 아닌, 평면과 입체, 여러 창작기법의 혼재와 세대나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교감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라고 강조했다. <Beyond the Surface: 층위 그 너머> 전시의 참여 작가는 김혜원, 란킴, 박능생, 박미진, 박병일, 박태준, 서수영, 서재현, 세오시, 안진의, 유현수, 오윤, 유기중, 이길우, 이라금, 이상덕, 이애리, 이영애, 최재성, 최지윤, 하용주, 한기창 등이다.
최근 한국적 정서가 담긴 콘텐츠가 큰 주목을 받으면서 한국화 장르를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변하고 있는 듯하다. 사실 ‘한국화는 전통성에 매몰된 고루한 장르’라는 선입견이나 편견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화만큼 폭넓은 표현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장르도 드물다. 실제로 현대한국화는 전통적 개념의 지필묵이란 물성이나 재료적 한계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의 정신적 원형을 근간으로 한 창의적인 실험성이나 개념적 해석의 화려한 변주가 크게 확산하고 있다.
가령 이길우 작가의 경우 두께감 있는 장지에 현대인의 일상을 포착한 장면을 채색기법으로 표현한 후, 그 위에 향불로 수많은 구멍을 낸 순지를 덮어 마무리한다. 마치 실루엣 커튼 너머의 군상들이 수군거리는 묘연한 대화를 엿듣도록 그 수많은 구멍이 스피커 역할을 해주는 듯해 아주 흥미롭다. 반면 이애리 작가의 그림은 아주 심플하다. 주로 한지에 주묵(朱墨)이나 청묵(靑墨)만을 사용한다. 그녀의 시그니처 역할인 ‘꽈리’ 형상을 섬세한 선묘의 반복적 행위만으로 표현했다. 지극히 사실적 형상으로 표현했지만, 결과물은 명상적 사유로 유도하는 감흥이 더욱 선명하다.
요즘 ‘케데헌’ 열풍이 대유행을 타면서 한국의 호랑이 모습을 현대민화로 재해석한 이라금의 <Contentment> 작품도 눈길을 끈다. 작품 제목에는 ‘욕구가 충족되어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스러운 상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꽃들에 둘러싸인 호랑이의 미소 띤 표정이 부럽기까지 하다. 세오시 작가의 작품은 주름진 금박 기법으로 태고의 대지를 재현한 것처럼 신비로움을 더한다. 극적인 화려함 속에 최소한의 작가적 개입은 절제의 미학이 연출한 시공간의 깊이까지 엿보게 한다. 이 외에 세련된 색감과 패턴으로 현대채색화의 백미를 보여주는 안진의 작가를 비롯해, 한국화 특유의 매력을 품은 50여 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이달 19일까지 진행된다.
글 ㅣ 김윤섭
미술사 박사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