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뎅이의 복화술, 분열된 자아의 풍경

한의도, 난무(Boisterous Dance), 2025, Acrylic, oil on canvas, 148x286.5cm
한의도, 난무(Boisterous Dance), 2025, Acrylic, oil on canvas, 148x286.5cm

 

[아츠앤컬쳐] 오늘날 젊은 세대의 회화는 더 이상 단순한 재현이나 전통적 기법에 머무르지 않는다. SNS, 숏폼 콘텐츠, 가짜 뉴스와 같은 미디어 환경 속에서 매일 흔들리는 자신만의 정체성과 감정의 파편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아직 20대 초반인 한의도는 이 질문 앞에서 과감히 답을 제시한다. 그의 작업은 ‘자기분열(self-fragmentation)’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내적 균열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시각화한다.

한의도, 러브버그(Lovebug), 2025, Acrylic, oil, gel stone on canvas, 162.2x130 cm
한의도, 러브버그(Lovebug), 2025, Acrylic, oil, gel stone on canvas, 162.2x130 cm

호리아트스페이스에서 지난달 27일부터 이번 달 27일까지 열리는 한의도의 초대 개인전 《풍뎅이의 복화술》에는 흥미로운 조형 언어로 쓴 질문들로 가득하다. 그녀의 화면 속 인물은 눈, 손가락, 표정 등이 낯설게 뒤틀려 있다. 그러나 그 기괴함은 낯선 충격에 앞서, 오히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겪을 만한 ‘익숙한 불안’과 닮아있다. 가령 <조금만 잘라주세요>, <러브버그>, <풍뎅이> 같은 작품들은 일상의 언어를 제목으로 삼아, 관람자로 하여금 “나는 왜 이렇게 보았을까?”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한의도, 풍뎅이(Beetle), 2025, Acrylic, oil on canvas, 116.8x91cm
한의도, 풍뎅이(Beetle), 2025, Acrylic, oil on canvas, 116.8x91cm

한의도의 화면은 배경과 인물이 다른 결을 가지며 감성적으로 충돌한다. 투박하고 단순한 아크릴 배경 위에, 매끄럽고 사실적인 유화의 블렌딩으로 묘사된 인물은 낯선 긴장감을 형성한다. 이는 익숙한 시각적 규범에 적절한 균열을 선사하고, 관람자에게 ‘자아와 타자’, ‘개인과 사회’ 사이에 적절한 간극을 체감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화면 전반을 주도하는 드로잉 선묘들은 무의식적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게 해준다. 독창적인 표현 방식, 해체와 재조합을 넘나드는 형상성은 곧 ‘인식의 왜곡이 발생하는 지점’을 포착할 수 있는 회화적 장치다.

한의도, 낚시(Fishing), 2025, Acrylic, oil on canvas, 116.8x91cm
한의도, 낚시(Fishing), 2025, Acrylic, oil on canvas, 116.8x91cm

또 하나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작가의 세대적 감수성이다. Z세대 특유의 빠른 체험과 소비문화 속에서도, 한의도는 결코 즉각적 해답을 좇진 않는다. 대신 유머와 아이러니로 무거운 사회적 문제를 환기하고, 익숙한 상황을 역으로 낯설게 전환하는 지혜를 발휘한다. 이는 동시대 젊은 세대의 작가들이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탐색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듯하다. 그녀의 작업이 단순히 ‘트렌디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인식 구조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한의도, 조금만 잘라주세요(Just a trim, please), 2025, Acrylic, oil on canvas, 116.8x91cm
한의도, 조금만 잘라주세요(Just a trim, please), 2025, Acrylic, oil on canvas, 116.8x91cm

특히 눈의 묘사는 작품을 읽는 핵심적 요소이다. 사실적으로 표현된 눈빛은 관람자와 직접 시선을 교환하며, 감정의 투사와 내면의 교류를 유도한다. 하지만 제각각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거나, 눈동자를 복수로 묘사해 인물 내면의 다중적 자아를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이 역시 “무엇이 진실처럼 보이도록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더불어 기괴한 형상이나, 유머러스한 장면 연출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무겁지 않게 비틀어냈다. 현실을 직시한 세대적 불안감을 정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결국 한의도의 작업은 한정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람자가 잠시 멈춰 서서, 익숙한 자신의 인식 구조와 편견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뒤집힌 풍뎅이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몸짓은 곧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지 모른다. 이번 한의도의 개인전 《풍뎅이의 복화술》은 전통적 회화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젊은 세대 작가로서 분열된 자아와 혼란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사유적 깊이를 확장해 갈 것인지 스스로 되묻고 있다.

 

한의도 작가
한의도 작가

한의도(2003~) 작가는 숙명여자대학교 회화과에서 동양화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작가는 왜곡된 신체와 일상적인 배경을 병치하여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알레고리적인 풍경을 구성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심리적 환경으로 야기되는 불안한 정체성과 자아 분열을 드러내는 동시에 오늘날 끊임없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유동적 존재인 ‘자아’를 암시한다. 작가는 알파라운드(서울, 2023), 이랜드스페이스(서울, 2024), 호리아트스페이스(서울, 2025)에서 세 번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문신미술관 문갤러리(서울, 2024), 끼갤러리(서울, 2024), 겸재정선미술관(서울, 2025), 경기상상캠퍼스 공작 1967(안산, 2025) 등 다수의 그룹전 및 기획전에 참여하였다. 브리즈 프라이즈 수상(2024), 이랜드 문화재단 14기 공모작가로 선정(2024)되었으며 제16회 겸재 내일의 작가 공모 우수상(2025)을 수상하였다. 작품은 경기문화재단, 겸재정선미술관, 브리즈 아트페어, 이랜드 갤러리 등 기관 및 개인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글 ㅣ 김윤섭

예술나눔 공익재단 아이프칠드런 이사장,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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