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세상이 인정하는 반전의 장인이다. 대표작<식스 센스>는 여전히 반전 영화의 대명사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언브레이커블>이나 <빌리지>의 그것들도 못지않게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샤말란의 영화가 반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고 비주얼리스트이다. 그의 영화들은 음침하면서 아름답고, 공포스럽지만 재미있다. 샤말란 감독은 공들여 이야기의 탑을 쌓아가다 반전으로 한 번에 무너뜨리고 관객들이 놀라게 하는 고전적인 기법을 거의 모든 영화에서 활용한다. 이 탑의 주재료는 관객이 가진 ‘믿음’이다.

<글래스>는 <언브레이커블>을 시작으로 <23 아이덴티티>를 거쳐 완결된 샤말란 버전의 히어로 3부작 마지막 작품이다. <글래스>를 잘 이해하려면 전작들을 미리 시청해야 하는데, 특히 <언브레이커블>은 반드시 먼저 볼 것을 권한다. 19년 동안 완성된 이 트릴로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특별하다. 일단 주요 갈등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대결이다. <언브레이커블>은 코믹북 속 히어로들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진 엘라이자(사무엘 L. 잭슨)가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던, 다소 우울해 보이는 평범한 아저씨 데이비드(브루스 윌리스)를 히어로로 각성시키는 이야기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다양한 영화 장르를 넘나들며 동일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다이하드> 시리즈나 <식스 센스>에서도 우울한 중년 남성이 초인적인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었는데, 이는 <언브레이커블> 데이비드와도 동일 선상에 있다.

2017년 개봉된 <23 아이덴티티>는 처음에는 <언브레이커블>과 상관없는 영화처럼 보였다. 23개의 다중인격을 가진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은 나름의 규칙으로 비교적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데 24번째 인격 ‘비스트’가 등장하면서, 3명의 소녀를 납치하는 범죄를 저지른다. ‘비스트’는 벽을 기어 다니고 쇠창살을 맨손으로 휘는 괴력의 소유자로 코믹스가 요구하는 빌런의 자격을 갖추었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이 몇 안 되지만, 제임스 맥어보이의 원맨쇼를 통해 많은 인물을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는 단순히 표정이나 말투뿐 아니라 인격에 따라 몸 자체를 변화시키는 신기에 가까운 연기를 보여주는데, 신비한 원맨쇼는 <글래스>에서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이 영화의 반전은 이 작품이 <언브레이커블>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쿠키 장면이었다. 이후 샤말란의 팬들은 그의 히어로 유니버스가 어떻게 구현될지 기대해왔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글래스>가 개봉했다. 히어로 데이비드와 빌런 케빈의 화려한 전투신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많이 당황했다. 이 영화는 본인이 코믹북 속 영웅과 빌런을 현실 속에 탄생시켰다고 믿는 엘라이자와 이러한 믿음은 착각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엘리 스테이플 박사(사라 폴슨) 간의 갈등이 주 내용이다. 특히 엘라이자는 자신의 빌런 이름을 ‘미스터 글래스’라고 이야기하며 이 영화의 주인공이 바로 그임을 확인시킨다.

이 영화 제목 <글래스>는 유리같이 약한 뼈를 가진 엘라이자를 뜻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깨지기 쉬운 믿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엘라이자나 스테이플 박사뿐 아니라 이 영화 속 조연들까지도 각자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믿지 않는 것도 다른 종류의 신념이다.

샤말란 감독의 작품들은 유령, 히어로, 외계인 등 세상 모든 신비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참으로 솜씨 좋은 이야기꾼이어서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아무리 황당해도 빠져들게 될 수밖에 없다. 엘라이자는 자기가 만들어낸 영웅과 빌런들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스테이플 박사와 싸운다. 스테이플 박사는 모든 신비한 현상들은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엘라이자는 설명되지 않는 진실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헷갈린다. 스테이플 박사의 논리적 설명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이 또한 반전을 통해 무너진다. 샤말란 감독은 관객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유리 같은 것인지 알려 주고 싶어 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반전 또한 결국 믿음에 대한 배신이다.

글 | 도영진
이십세기폭스 홈엔터테인먼트 코리아 대표, CJ E&M 전략기획담당 상무 역임
보스턴컨설팅그룹 이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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