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작전명령 암호를 해독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해독이 불가능하게 되자 빠른 계산이 가능한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게 된다는 스토리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컴퓨터의 원리는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그 당시 집채만 하던 컴퓨터는 이제 그보다 수백 수천 배 넘는 성능에도 불구하고 훨씬 작고 편리해져서 가볍게 들고 다니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계치라는 말은 흡사 바보라는 말과 비슷하게 쓰인다. 온통 기계 천지여서 매일 새로운 매뉴얼을 익히느라 요즘 사람들은 머리를 많이 써야 하는세상이 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 폰을 들고 태어나는 요즘 세대와는 다르게 일생동안 아날로그에서 모든 것이 디지털로 바뀌는 세상을 경험하는 기존 세대들에게는 때때로 기계 공포증까지 들게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온갖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들도 많다. 그중 우리 가까이 있는 것 중 대표적인 예로 손목시계가 있다.

1707년 10월 영국 전함 4척이 본토를 코앞에 두고도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 좌초되어 2,000여 명이 수장되어 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 이후로 1714년 아이작 뉴턴을 포함해 발족한 경도위원회는 경도 측정을 정확하게 할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상금 2만 파운드를 걸었다(역사상 최초의 경도 측정 상금을 내건 사람은 스페인의 국왕 필리포 2세다). 360도를 24시간으로 나누면 15도씩 나오는데 그게 바로 시차이며 위도와 같이 지구상 위치를 알아낼 수 있는 기준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마린크로노미터가 완성되기까지 바다 위에서 지구 경도선을 나눌 방법은 전무했다.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기존의 시계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위치에 따른 중력변화, 극지방과 적도지방의 온도차, 폭풍우에 흔들리는 배속에서도 오차가 없는 시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졌기에 다양한 아이디어가 동원되었다. 그중 실패한 예로, 특정 별자리를 지나는 달의 위치를 통해 경도를 알아내려는 천체 과학자가 40년간 매달렸지만 아무 소득 없이 끝낸 연구 기록도 남아 있다.

존 해리슨
존 해리슨

이때, 목수 출신의 존 해리슨이 크로노미터 시제품을 가지고 연구비를 지원받으며 마침내 1759년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작은 H4(해리슨이 만든 4번째 모델) 시계를 만들었다. 실험 결과 1762년에 65일간의 항해를 통해 단 5초 정도의 극미한 오차만을 확인했음에도 경도위원회는 질질 끌다가 결국 1만 파운드에 모든 제작 비밀을 넘기는 조건으로 H4의 세부사항을 확보한다. 해리슨은 1773년 조지3세 앞에서 직접 시연한 H5(10주간 0.3초 오차)로 그 공로를 인정받고 국회로부터 나머지 상금의 반을 지급받아 영국 서민 출신 백만장자 기술자가 탄생하게 된다.

이 시계는 국가 일급기밀로서 원본 시계는 국외반출이 금지되었다. 당시 경쟁 상대였던 스페인에 기술이 새어나가면 안 되기에 단 4개의 복제품을 만들었고, 그중 하나로 제임스쿡 선장은 전 세계 바다를 안전하게 누비며 명성을 떨치게 된다. 하지만 기술은 자연스럽게 유출되었고 프랑스를 거쳐 스위스까지 건너가 극한의 정확도를 자랑하는 시계 메이커들이 생겨났다. 스위스 메이커들은 그들의 9개의 천문대로부터 인증을 받는 형식을 통해 그들의 기술력을 과시했다.

한편 1904년 프랑스 브랜드 카르티에는 항공기 조종사가 운전 중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는 불편함을 덜기 위해 손목시계를 만들었다. 이때부터 F1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 간에 최고급 손목시계를 겨루는 대회가 만들어졌다. 회중시계 가격은 처음엔 함선 제작비용의 30%에 이르렀지만, 19세기 초반에는 숙련 기술자의 두 해 연봉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19세기 중반부터는 제조 방법의 발전으로 해군 장교들만 들고 다닐 수 있었던 시계를 일반인들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 의해 작곡되어 1874년 4월 5일 빈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레타 ‘박쥐’를 보면 2막에서 주인공 아이젠슈타인이 세금포탈 문제와 폭행 사건으로 유치장에 들어가게 되는데 구금 직전 부인 몰래 파티에 간다. 거기서 만난 가면 쓴 헝가리 여인(실은 아이젠슈타인 몰래 파티에 참석한 그의 부인 로잘린데)을 유혹하는데, 그때 사용한 물건이 바로 주머니에서 꺼낸 회중시계였다.

한 손에는 움직이는 시계를 들고 다른 한 손은 여인의 맥박을 재는 행동을 통해 유혹과 터치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아이젠슈타인은 맥박을 재는 과정에서 헝가리 여인에게 시계를 빼앗겨버리는 낭패를 당한다. 이어 성악가 알프레드와 바람난 아내 로잘린데의 현장을 잡은 상황에 이르렀을 때, 로잘린데는 남편에게서 빼앗은 시계를 보여주며 쌍방 폭로를 통한 협박으로 위기를 넘긴다. 결국 모두 술기운에 저지른 일이라고 양해를 구하면서 흐지부지 막을 내리는 스토리다.

아이젠슈타인은 워낙 부자였기에 군사적 목적으로 해군장교만 갖고 있던 값비싼 크로노미터 시계를 소유하고 있었다. 1887년에서야 카를 벤츠가 가솔린차를 만들었으니 오페레타 박쥐가 공연된 당시에 차를 가지고 자랑할 일은 없었을 터. 부를 자랑할 만한 아이템 중 회중시계는 갑이었다.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고가의 스마트폰과 외제차 키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남자가 TV 드라마에 희화화된 이미지로 자주 등장했듯이 말이다.

한때 인간에게 던져진 난제를 풀기 위해 많은 국가들이 거액의 상금을 걸면서 어렵게 이루어낸 기술이지만 오늘날 모바일폰에 밀려 마니아들을 제외하곤 값비싼 손목시계를 차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한때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던 오페라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무수한 스토리와 인간의 노력이 담겨져 있으니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매력 또한 분명히 있다. 빠른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수백 년 살아남은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니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