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엄청나다는 의미를 호들갑스럽게 부풀릴 때 ‘핵폭탄 급’이라는 말이 종종 쓰인다. 핵폭탄의 위력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사용해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말이다. 핵폭탄이 실전에 사용된 일은 역사상 일본 본토에 두 차례뿐이지만 이를 지켜본 세계는 그 가공할 위력에 경악하며 이후 핵무기 확산을 억제하는 조약을 맺어왔다. 그러나 핵의 위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또한 최근 한반도가 그 위협의 강도에 있어서는 꽤 아슬아슬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과거 냉전시대의 가장 큰 이슈는 실전에서 얼마나 강력한 핵무기를 사용할 것 인가였고 이 팽팽한 긴장감은 ‘인류에게 남은 시간’과 같은 비유로써 수많은 사람들의 공포심을 일깨웠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시절 “세계종말이 12시라면 우리는 11시 59분에 있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처럼.

한편 아이러니하게 이같은 공포상황은 꽤 훌륭한 이야깃거리로 소비되기도 했는데, 영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에서 냉전시대의 극적인 한 장면을 볼 수 있다. 1962년 10월 22일 쿠바 내 소련 미사일 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미국과 소련이 제3차 대전 발발 직전의 위기로까지 대립했던 ‘쿠바 사태’에서 180척의 군함을 동원한 미국의 쿠바 해상봉쇄를 무시하고 돌진하던 소련 군함들이 결국 교전 직전 물러난 일이 있었는데 영화상에서는 이미 서로를 향해 발사한 미사일들을 엑스맨들이 무력화시키는 설정으로 나온다.

그러나 일촉즉발의 상황은 계속 이어져 불과 닷새 후인 10월 27일 또다시 해상 봉쇄선에서 경고를 무시하고 쿠바 해역으로 향하는 소련의 잠수함 B-59에 미군이 어뢰를 발사하는데, 잠수함 B-59에는 핵무기가 탑재된 상황이었다. 공격을 받은 소련 잠수함의 함장인 발렌타인 사비츠스키는 핵전쟁의 시작으로 판단해 핵미사일 발사를 지시하지만 탑승 장교 바실리 아르키포프가 핵미사일 발사 거부권을 행사하고 교전의사가 없음을 미군에 알림으로써 핵전쟁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다. 핵미사일 발사 여부로 격렬한 갈등이 벌어지던 장소를 미국 잠수함으로 바꾸어 스크린에 옮긴 것이 영화 <크림슨 타이드(1995)>다.

이 사건들 외에도 러시아의 경고에도 불구 독자적으로 미국 정찰기에 발포해 추락시킨 쿠바, 기체 이상으로 러시아 상공을 침공한 미국 정찰기 사건 등 두 나라의 무력시위로 인한 전쟁 발발의 심각성에 비하면 트럼프의 한반도 상공 무력시위는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인류에게 던져진 두려움의 시작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쟁적으로 개발한 핵폭탄의 탄생에서부터일 것이다. 1945년 7월 15일 미국이 먼저 원자폭탄의 실험에 성공한다. 원래 독일을 상대로 개발했던 핵폭탄은 5월 7일 독일이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버티던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고 일본은 속절없이 항복을 선언한다. 일본 역시 핵폭탄을 개발 중이었지만 단지 우라늄 확보에 시간이 많이 소요돼 미국보다 한발 늦었기에 망정이지(독일의 잠수함에 실려 오던 560kg의 우라늄이 미군에 의해 제지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이 최초로 핵개발에 성공했었다면…하는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려온다.

미국의 핵폭탄은 물리학 박사 로버트 오펜하이머와 그가 이끈 뉴멕시코 지역 로스알라모스의 원자폭탄 연구팀(맨하튼 프로젝트팀)이 만들어냈다. 오펜하이머 박사는 ‘원자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엄청난 업적임에는 분명하나 원폭투하로 희생된 수많은 인명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를 견뎌야 하는 인생이 아니었을
까?

가난한 유태계 독일인이었던 로버트는 열일곱의 나이에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과학뿐 아니라 5개 이상의 언어와 동양 철학 등 다방면에 두각을 나타냈던 천재였다. 그는 원자폭탄의 개발을 과학계의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보았으나 일본 원폭투하 이후 그 운용이 군부와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독점적으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으로 선회한다. 이런 입장 때문에 정부로부터 배척당했고,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음에도 아내 ‘캐서린 헤리슨’의 대학시절 과격 집회 경력과 공산주의 모임에 자금을 보냈다는 이유로 냉전시대의 버림을 받았던 비운의 과학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고뇌를 그린 오페라 <Doctor Atomic 원자력 박사(San Francisco opera, 2005)>가 만들어졌다. <Nixon in China 중국에 간 닉슨(Huston Grand opera, 1987)>의 작곡가 존 애덤스(John Adams)와 유명 연출가 피터 셀라스(Peter Sellars)의 재협업으로 만들어진 2막짜리 작품이다. 실존 인물들의 기억, 인터뷰, 핵물리학의 기술적 용어, 공개된 정부의 기밀문서 등을 담은 대본은 연출가 피터 셀라스가 직접 썼다.

이야기는 뉴멕시코에서의 원폭실험(Trinity test) 직전부터 시작되어 원자 폭탄 로켓이 폭발되는 실험의 완성 시점까지 이어진다. 주요 등장인물은 오펜하이머 박사, 그의 아내 캐서린, 동료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 오펜하이머의 애매모호한 공산주의 참여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 연구소장으로 기용한 그로브스 장군. 유럽의 재편을 위한 포츠담 회담 직전 스탈린보다 유리한 입장을 고지하기 위해 워싱턴으로부터 계속되던 핵폭탄을 완성하라는 압력에 모든 연구소 사람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경쟁 상대였던 독일이 항복을 한 상태에서 일본에게 굳이 원자탄을 사용할 필요가 있겠냐는 과학자들의 회의적 시각과 강력한 힘이 필요한 정치가들의 시각 차가 만들어 낸 갈등 속에서 결국 실험에 대한 극도의 불안과 암울한 오펜하이머의 비전을 보여준다.


글 |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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