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보며 지내는 현대 직장인들은 하나같이 목과 어깨의 통증을 호소한다. 과거 빨래나 행주 등을 비틀어 짜는 동작을 과도하게 한 주부들이나 겪던 손목과 손가락의 통증을, 이제는 스마트폰을 달고 사는 어린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겪고 있다. 모두 문명의 이기가 주는 불가피한 부작용이다.
또한 우리는 바다 건너 밤낮이 바뀐 나라의 사람과도 내 집에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도, 가까운 사람을 만나는 약속은 번번이 다른 일 때문에 미루곤 한다. 그러니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제한적이어도 우리들 메신저의 친구목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영국의 인류학자이자 디지털 전문가인 로빈 던바 교수에 의하면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의 최대치는 대략 150명이라고 한다. 그는 펍에서 친구를 우연히 만나도 그와 거리낌 없이 술을 마시거나 식사가 가능한 정도면 그 사람은 150명 범위의 친밀한 관계로 볼 수 있다고 개인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고 보니 우연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고 거리낌 없이 그 사람과 갑자기 식사가 가능할까 생각해 보니 우리는 아는 사람과 친구의 기준이 모호한 세상에 사는 것 같다.
그에 반해 자신이 극도로 어려울 때 도움을 줄 만한 지인의 숫자는 평균 다섯 명을 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인간의 친밀한 관계가 제한적인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의 수준이 어느 임계치를 넘어야 하는데 바쁜 일상에 치이는 우리에겐 믿음을 쌓을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내 일을 해야 하니까, 내 코가 석 자니까. 친구는 못 만나지만 비즈니스 미팅은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는 것이 현실 아닌가? 그래서 믿을만한 소수의 친구를 ‘절친’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사나 보다.
그리고 일반 직장인이든 대통령이든 상황은 비슷하다고 본다. ‘함께 일하려면 먼저 친해져야 한다’라는 기본적 조건이 있다. 같이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은 남이 모르는 사회적 계약 이상의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것의 첫 단계가 소셜네트워크다.
사회적 관계망, 혈연, 학연, 지연, 경제공동체 등 끈이 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우리는 서로를 묶는다. 이런 공통적인 관계망이 설정되지 않으면 그 조직은 와해되기가 아주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놈의 학연, 지연, 혈연 때문에 생기는 마피아식 부작용을 엄청나게 경험하고 없애보려고도 노력하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 생존 본능에 반하기 때문에 공허한 외침이 되곤 한다.
또한 여럿이 같이 살기 때문에 사기와 배신의 뉴스 또한 자주 들린다. 유럽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사람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죄라고 믿었던 것 같다. 피렌체에서 활동한 단테가 지은 작품 ‘신곡’ 중 지옥 편을 보면 시저를 배신한 브루투스와 그를 꼬드긴 카시우스 그리고 예수를 배신한 유다가 가장 고통스러운 아홉 번째 지옥에 머물며 영원히 악마의 입속에서 껌처럼 씹혀지는 벌을 받고 있다.
로마는 공화정이 시작되고 450년간 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이 있지만, 실상 로마의 전성시대는 줄리어스 시저로부터 시작되었다. 해외 원정으로 많은 땅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재화가 로마로 집중되었고 시저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강화해나갔다. 줄리어스 시저는 그의 마지막 경쟁자 폼페이오를 제압해 이집트로 귀향 보냈는데, 그가 이집트의 왕 프톨로메오에 의해 살해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폼페이오를 죽이든 살리든 그것은 전적으로 시저의 손에 달린 문제였건만 그만 엉뚱한 사람이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 시저는 이집트에 엄청난 배상금을 요구하며 아예 왕조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했다. 이때 나타난 여인이 실각했던 여왕 클레오파트라다. 그녀는 미인계로 시저를 설득해 동생을 축출하고 여왕의 자리에 재등극한다.
BC 44년 3월 11일 해외출정을 위해 소집한 원로회의에서 칼을 든 암살자들에게 둘러싸여 쥴리어스 시저는 암살당한다. 자신이 그토록 아끼고 믿었던 브루투스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칼을 든 것을 발견하고는 충격과 공포 속에 생을 마감했다.
홀로 남겨진 클레오파트라는 시저가 암살당하고 등장한 3명의 후계자 중 하나인 안토니우스와 결혼했는데,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유부남이었고 그의 부인이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차지한 옥타비아누스의 여동생이었다. 결국 이들 사이의 전쟁은 이집트의 앞바다 악티움 해전에서 결판이 났고 패전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세기의 스캔들은 헨델에 의해 ‘이집트에 간 줄리어스 시저’(King's Theatre in the Haymarket, London 1724.2.20) 라는 제목으로 오페라가 되었는데 시저가 클레오파트라를 도와 왕위를 되찾는 내용을 담았다. 시저의 마지막은 고통스러웠다. 로마를 평정할 때 상대편 폼페이오의 편에 서 있던 브루투스만큼은 목숨을 살려 자신의 측근으로 두고 아꼈지만, 그런 브루투스가 공화정을 지키자고 대의명분을 앞세운 카시우스에 설득당해 주군을 배신했다. 브루투스에 대한 역사의 판단은 다양하겠지만 이미 단테는 그를 지옥으로 보내버렸다(물론 클레오파트라도 지옥에 보내버렸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현대인은 브루투스에게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웬만해선 150명 정도야 가뿐히 넘기는 우리 친구들의 목록 속에는 나에게 배신의 고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배신으로 고통받기 위해선 먼저 깊게 사랑해야 하니 말이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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