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Wilda Joseph Lanner und Johann Strauss
Charles Wilda Joseph Lanner und Johann Strauss

[아츠앤컬쳐] 요한 슈트라우스 1세(Jahann B. Strauss Ⅰ, 1804~1849)가 작곡한 『라데츠키 행진곡(Radetzky March)』은 오스트리아 비엔나(Vienna) 신년 음악회의 피날레 음악으로 장식되는 것이 관례화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 곡은 40여 곡의 행진곡을 작곡하였던 슈트라우스 1세의 가장 대표적인 행진곡 중 하나이다. “라데츠키”는 나폴레옹 전쟁 당시, 나폴레옹이 현재의 이탈리아 지역으로 원정 전쟁을 왔을 때 오스트리아의 이탈리아 주둔군 총사령관이었던 라데츠키(Joseph Wenzel Graf von Radetzky, 1766~1858)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Johan Strauss Ⅰ
Johan Strauss Ⅰ

라데츠키는 나폴레옹과 맞서 싸웠으며 쿠스토차 전투(1848)와 노바라 전투(1849)에서 사르데냐 왕국의 군 세력을 격퇴시키는데 큰 공을 세워 오스트리아 구체제의 유지에 크게 기여한 장군이다. 1848년 구체제의 전제정치에 저항하는 ‘3월 혁명’이 발발하자 정부군의 사기를 진작하고 민족적 영웅으로 추앙을 받던 라데츠키 장군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라데츠키 행진곡』을 작곡하게 된다. 당시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서민이었으나, 궁정무도회의 악장으로 상류층과 많은 교류를 하던 인물이었다.

​​Josef Radetzky Lithographie​​
​​Josef Radetzky Lithographie​​

비엔나의 군악대장으로 군의 사기 진작에 기여하기도 했던 것으로도 유명했던 것을 떠올려본다면, 요한 슈트라우스 1세에 대한 구체제의 신임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를 합스부르크 체제의 정치적 이념을 대표하는 예술가로 분류하기도 한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공연은 언제나 수차례 앙코르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지만,당시 공연장에는 학생, 노동자 등을 포함한 서민들은 일절 없었다고 한다. 그는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하여 정부군이 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일조하였기 때문인지, 오늘날 오스트리아 국민들에게 『라데츠키 행진곡』은 합스부르크가의 전성기와 함께 유럽을 지배했던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하는 곡이기도 하다.

Radetzky March by Johann Strauss Sr, cover sheet, 1848
Radetzky March by Johann Strauss Sr, cover sheet, 1848

장군에 대한 찬양곡은 우리에게는 어쩐지 낯설게 다가온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장군에 관한 찬양이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하여 작곡한 곡으로 유명한 것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거나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노래에는 금지곡이라는 딱지를 붙였기 때문에 유명세를 타기가 어려워 이와 같은 곡을 찾아보기란 더더욱 어렵다. 이러한 곡 중 하나인 『목포의 눈물』은 1935년 제1회 향토노래 현상모집(懸賞募集) 당선작으로 민족 수난의 역사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이난영-목포의 눈물 레코드(1935년)
이난영-목포의 눈물 레코드(1935년)

『목포의 눈물』은 문일석 시(詩)에 작곡가 손목인이 곡을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문일석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전사 300년을 맞아 1절에 목포의 낭만과 꿈을, 2절에 민족의 원한을, 3절에 충무공 추모의 정을 담았다고 한다. 『목포의 눈물』이 발표되자마자 일본 경찰이 노래와 관련된 사람들을 소환했다고 한다. 일본 경찰은 2절의 “삼백연 원안풍은 노적봉 밑에”라는 구절을 문제 삼았다. 담당자들은 ‘삼백연’은 연못의 이름이고 ‘원안풍’은 바람의 이름이라고 해명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삼백연’이라는 연못도 ‘원안풍’이라는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목포 유달산
목포 유달산

‘삼백연 원안풍’은 ‘삼백 년 원한 품은’의 한자어 음차에 불과할 뿐이었다. “삼백 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가 뜻하는 가사는 1592년 임진왜란과 연결된다. 목포는 특수한 입지 덕에 바다에서 쳐들어오는 왜적을 경계할 수 있는 곳이다. 유달산 노적봉을 멀리서 보면 군량미를 쌓은 듯 보이는데, 이순신 장군이 이를 이용해 왜적과 싸우지 않고 이겼다고 하여 내려오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단순히 한자어 음차라는 기지를 발휘해서 문제없이 『목포의 눈물』을 발매할 수 있었던 것인데, 오늘날 경찰서에서 함부로 거짓된 진술을 했다가는 곤경에 처할 수 있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바다
유달산에서 바라본 바다

A모씨는 1999년 여름 B시 소재 다방 앞 노상에서 혈중알코올농도 미상의 음주 상태로 자신의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진행 방향 앞길 우측에서 걸어가던 C씨를 위 승용차의 앞범퍼로 들이받아 넘어지게 하여 약 3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뇌진탕 등의 상해를 입게 하는 사고를 일으키게 된다. A모씨는 자신이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낸 사실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여 술을 마시지 않은 타인의 혈액을 마치 자신의 혈액인 것처럼 꾸며 사고조사 담당 경찰관에게 제출하여 처벌을 피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인근 병원에서 미리 자신의 혈액형과 같은 환자의 혈액을 채취하여 놓은 후, 경찰관으로부터 음주측정을 요구받자 바로 음주측정 대신 혈액채취를 하겠다고 하고, 미리 준비한 혈액을 마치 자신의 혈액인 것처럼 속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010% 미만이라는 감정 결과가 도착하고 결국 관할 경찰서에서는 A모씨가 음주운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건을 종료한다. 그러나 이후 CCTV(Closed Circuit Television)에 의하여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게 된다.

위와 같이 교통사고 조사를 담당하는 경찰관에게 타인의 혈액을 마치 자신의 혈액인 것처럼 건네주어 위 경찰관으로 하여금 그것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하여 혈중알코올농도를 감정하게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음주운전 혐의에 대하여 공소권 없음의 의견으로 송치하게 한 행위는, 단순히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진술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은닉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착오를 이용하여 적극적으로 피의사실에 관한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고 판단된다(대법원 2003. 7. 25. 선고 2003도 1609 판결). 이 경우에는 기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추가되어 처벌받게 된다.

사실 수사기관이 범죄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는 진술자의 진술 내용에도 불구하고 범죄행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수집·조사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수사를 받는 자는 진술거부권과 자기에게 유리한 진술을 할 권리와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권리가 있지만 수사기관에 대하여 진실만을 진술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선서를 한 증인이 허위 진술을 할 경우 위증죄가 성립하는 것과 달리, 수사를 받는 자의 경우에는 수사기관에서 반드시 진실만을 말하도록 법률상의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에 대하여 허위사실을 진술하거나 허위의 증거를 제출하였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충분한 수사를 하지 아니한 채 이와 같은 허위의 진술과 증거만으로 잘못된 결론을 내렸다면, 이는 수사기관의 불충분한 수사에 의한 것으로서 피의자 등의 위계에 의하여 수사가 방해되었다고 볼 수 없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수사를 받는 자가 적극적으로 허위의 증거를 조작하여 제출하였고 그 증거 조작의 결과 수사기관이 그 진위에 관하여 나름대로 충실한 수사를 하더라도 제출된 증거가 허위임을 발견하지 못하여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될 정도에 이르렀다면, 이는 위계에 의하여 수사기관의 수사행위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으로서 법원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된다고 보았다.

글 | 이재훈
문화 칼럼니스트, 변호사,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혁신제도연구팀장, (주)파운트투자자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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