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아씨시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가톨릭 성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성 프란체스코의 고향이며, 그의 삶이 이곳에 남아 있기 때문에 순례자들을 포함한 많은 관광객이 늘 이곳을 찾는다. 중세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아씨시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멋과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산타 키아라 성당에서 조금 걸으면 코무네 광장에 이른다. 광장에는 장중한 코린트 양식의 돌기둥 여섯 개가 떠받치고 있는 미네르바 신전이 있어 여행객들의 시선을 한참이나 붙잡는다. 기원전 1세기에 건설된 이 고대 로마 신전에서는 우아한 품위가 느껴졌다. 마침 광장을 가로질러 마치 그 옛날 프란체스코처럼 허름한 수도승 복장을 하고 맨발인 남자 여럿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일순간에 버리고 오로지 신념만을 위해 살아갈 자유는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거의 없는 중에 한두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이다. 눈으로 프란체스코를 닮은 순례자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살펴봤다. 거침없이 그러나 신중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에 저절로 숙연해졌다.
프란체스코 거리를 따라 성 프란체스코 성당으로 향했다. 겨울인데도 어느 도시보다 유난히 많은 순례자와 수도자, 수녀들이 조용히 골목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프란체스코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마을은 일반 여행자들에게도 마음의 평안과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준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안에는 <작은 새에게 설교하는 성 프란체스코>를 비롯해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그린 본도네의 벽화 28점이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복층으로 구성된 바실리카양식의 지하묘지에는 성 프란체스코의 무덤이 있다.
프란체스코는 죽은 지 2년 만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는데 공식적인 장례도 치러지기 전이었다. 그는 지옥의 언덕이라 불리는 콜레 델 인페르노에 있는 빈민의 무덤에 묻히기를 바랐지만, 자신이 산 프란체스코의 거대한 교회당 안에 모셔지리라고는 결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란체스코가 죽은 이후, 그의 유해는 새로 지은 성당인 성 프란체스코에 안장되기 전까지 산 조르조 교회에 있었다.
그때에도 정확한 무덤의 장소는 비밀이었는데 그의 유골이 도난당할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성자의 유해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있지만, 성자의 유골이 있는 유명한 순례지에서 축적할 수 있는 부유함에 대한 사람들의 욕심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신성하지 못한 모든 존재를 겪어 왔다. 만일 신이 나를 통해 행하신다면, 그분은 누구를 통해서든 행하실 수 있을 것이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과 아씨시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성당 앞 잔디밭에는 평화를 뜻하는 ‘Pax’ 문양이 새겨져 있고, 무성한 올리브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성 프란체스코 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아씨시의 일몰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아씨시의 일몰을 바라본 사람은 비록 순례자나 구도자가 아닐지라도 잠시 세상의 모든 것에서자유로워지는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올 무렵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는 것과 점심식사를 걸렀다는 현실이 확 찾아들었다. 미리 예약은 하지 않았지만 무작정 찾아가도 될 것같은 이탈리아 할머니가 운영하는 민박을 알고 있었다. 찾아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성자의 도시에서 가난한 여행자가 버려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갖고 말이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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