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스페인의 론다(Ronda)는 릴케와 헤밍웨이의 숨결이 살아있는 도시로 엘타호 협곡에 위치해 ‘절벽 위의 도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을만큼 숨막히는 경치를 자랑한다. 특히 마을을 가로지른 협곡 위에 놓인 누에보 다리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의 풍경은 아찔함과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아찔할 정도로 좁고 깊은 협곡을 사이에 둔 마을은 다리를 통해 이어져 있었다. 협곡을 내려가면 반대편 마을로 가는 길이 있지만 인간은 불편을 지속적으로 감수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곳에 다리를 놓았는데 현재의 다리는 원래 있던 다리가 무너지고 새로 지은 다리라는 뜻으로 ‘누에보(새로운)’ 다리이다. 하지만 이 누에보 다리가 지어진 것도 이미 200년이 넘었다. 1751년에 시작해 42년이나 걸린 공사는 협곡 아래에서 시작해 하나하나 벽돌을 쌓아 올렸다. 힘든 공사를 마치고 완공되자 감격한 건축가는 다리의 한쪽 면에 자신의 이름과 날짜를 새기려다 추락하고 말았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아찔한 추락의 유혹도 품은 다리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을까? 자살이 자주 일어나는 장소로도 유명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다리니까 말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몬태나 대학의 스페인어 강사로 근무하던 미국인 로버트 조던이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인류와 정의를 위해 타국의 전쟁에 뛰어든 청년은 가족을 잃고 강간당한 상처가 있는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이 여인을 위해 청년은 목숨을 버리게 된다.
사랑에 대한 열광은 시대를 초월해 늘 사랑받는 소재이므로 소설과 동명의 영화는 모두 큰 성공을 가두었다. 당시에 소설의 주인공 로버트 조던처럼 프랑코에 대항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향한 사람들은 꽤 많았다. 다양한 이념을 가진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시민의 정부를 지키기 위해 모여들었다. 전쟁에 자발적으로 참전한 의용군 중에는 유명인도 많았는데 파블로 네루다, 앙드레 말로, 조지 오웰, 헤밍웨이도 정부군에게 4만 달러를 지원하고,정부군에 협력하여 영화 〈스페인의 땅>의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곳 론다를 ‘사랑하는 연인과 머무르기에 가장 로맨틱한 도시’라고 말했던 헤밍웨이는 여름이면 론다에 살았다. 절벽 가장 자리에 있는 가파른 길은 헤밍웨이가 산책하던 길이지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진 않았다. 어쩌면 론다는 헤밍웨이 덕분에 더 유명해진 도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론다의 어딜 가도 이곳은 헤밍웨이가 지냈던 집, 헤밍웨이가 자주 들른 카페, 헤밍웨이의 길이라는 표시는 없다. 론다는 헤밍웨이를 팔아 장사를 하지 않는다. 그것이 어쩌면 론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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