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해외에 나가 있는 대사관들의 역할은 다양한데 그 안에는 상대국에 대한 정보수집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막대한 권력을 갖는 대통령 선거는 주변국들의 정책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얼마 전 미국에서 대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각 나라들이 트럼프 당선이라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선 캠프에 연결 가능한 인물 찾기에 고심하는 모습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고 현재는 실질적인 행동에 들어간 모양새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대선 역시, 주변 정세에 미칠 영향이 크기 때문에 각국의 대사관에선 있는 정보 없는 정보 죄다 쓸어 모아서 본국에 보고한다. 어떻게 입수했는지 모르지만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의 관계를 보고한 주한 미국 대사들의 보고서에는 ‘라스푸틴’이란 이름이 등장한다.

국정농단의 상징인 라스푸틴은 결국 암살당하는데 그의 이야기는 전 유럽에 걸쳐 단순한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문학작품, 영화, 심지어 오페라까지 문화 전반에 신드롬처럼 다뤄졌다. 이 스토리를 오페라화한 작품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핀란드에서 시벨리우스 이후 국제적 명성을 날리고 있는 작곡가 Rautavaara의 ‘라스푸틴’(2003년 10월 19일 헬싱키의 핀란드 국립극장에서 초연)이다. 그가 황실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되는 오페라 스토리로 핀란드의 세계적인 베이스 마티 살미넨의 카리스마로 큰 성공을 거둔 수작인데 하필 러시아가 200년간 지배했던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제일 유명한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황실에 들어가 신임을 얻어 사이비 교주 라스푸틴의 전성기가 열리면서 로마노프 제정 러시아의 내리막길 운명이 시작되었는데 대한민국의 현실이 사이비 교주의 농락으로 사라진 러시아 제정에 비교되는 것이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역사를 알아야 같은 과오를 피할 수 있기에 라스푸틴의 이야기를 좀 더 알아보고자 한다.

1838년 영국을 통치한 빅토리아 여왕이 갖고 있던 왕족의 혈우병 유전인자가 유럽 전체로 퍼져 나가는 건 시간문제였다.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 앨리스 공주, 그리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황후가 된 앨리스의 딸 알렉산드라,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결국 금지옥엽 러시아의 황태자 알렉세이에게 혈우병이 발병한다. 온갖 좋다는 방법을 써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고 1906년 위독했던 상황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라스푸틴에 의해 거짓말처럼 병이 진정되었다.

한편 1904년 러일전쟁 패전의 결과로 인한 재정 위기로 임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세인트피터스버그 겨울궁전의 광장으로 나와 황제를 외치며 제발 돈을 받게 해달라고 평화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15만 명의 군중을 향해 날아온 것은 군대의 발포명령이었다.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러시아 전역에서는 엄청난 파업과 시위로 들끓었기에 황제 부부의 정신 상태도 정상은 아니었다. 심적으로 기댈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혈우병이 잠잠해진 후 라스푸틴은 황실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고 그를 반대한 총리대신이 암살되자 내각의 장관들을 갈아치우고 급기야 1915년 황제를 제1차세계대전에 보내며 황실을 차지하기에 이른다.

물론 라스푸틴의 말을 듣고 움직인 니콜라이 황제는 전쟁에서 대참패를 했고 고갈된 재정으로 피폐된 민중의 외침과 함께 얼마 지나지 않아 제정 러시아는 1917년 혁명의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제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라스푸틴의 악명이 높아지고 황실에 대한 불만도 같이 높아졌으며 황후와 라스푸틴의 염문설 같은 괴소문이 러시아를 뒤덮었다. 1916년 12월 1일 더 이상 그 꼴을 볼 수 없었던 니콜라이 황제의 친척 펠릭스 유스포프 백작은 라스푸틴을 암살하기 위해 자신의 성으로 라스푸틴을 유인한다.

그리고 라스푸틴에게 청산가리를 탄 음식을 먹였음에도 효과가 없었고 오히려 라스푸틴의 요청으로 유스포프는 긴시간 노래를 해야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음식에 독을 타기로 했던 의사가 후환이 두려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핑계로 포도주와 케이크에 독을 탈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도저히 독의 효과를 기다리지 못한 유스포프가 그에게 총을 쏘았으나 경미한 상처만 주었다. 상황을 알아차린 라스푸틴은 곧바로 문을 열고 도망가려 했지만 몇 발자국 못 가서 대기하고 있던 드미트리 대공을 비롯한 다른 암살자들이 달려와 네 발의 총을 쏘았고 그 중 한 발이 치명상을 입혔다. 다시 집안으로 라스푸틴의 시체를 끌고 들어갔으나 갑자기 죽은 줄 알았던 라스푸틴이 꿈틀거리는 바람에 머리에 마지막 총알을 발사했다. 그리고는 한겨울 얼어붙은 강의 얼음 구멍으로 시체를 버렸다.

암살자들은 너무 긴장한 탓에 다리구조물 사이에 낀 라스푸틴의 고무장화를 두고 오는 실수를 저질러 결정적 증거를 남겼고, 경찰의 조사에서 성안의 핏자국은 드미트리 대공이 실수로 사냥개를 쏴 생긴 흔적이라는 옹색한 거짓말로 둘러댔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암살자 중 한 명이 자신이 라스푸틴을 죽였다고 경찰에게 자랑스럽게 떠벌려 모든 진실이 밝혀졌다. 황제와 황후는 매우 분노했지만 이 사건은 황실을 위해 왕족과 귀족들이 모의한 거사로 주범인 유스포프 백작과 드미트리 대공이 추방당하는 선에서 조용히 무마됐다(후일 드미트리 대공은 프랑스의 코코 샤넬과의 인연을 통해 샤넬 No. 5 개발의 1등 공신이 된다.).

라스푸틴, 그를 가리켜 그의 집안에서조차 ‘방탕한 놈’이라는 뜻의 ‘라스푸틴’으로 불렀고 현재까지도 그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필자가 러시아 사람이라면 진짜 라스푸틴이라는 이름이 싫을 것 같다. 스토리를 알고 보면 왜 라스푸틴의 이름이 대한민국에서 오르내리는지 더욱 이해가 간다. 세간에는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이 후일 드라마 소재로 쓰이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인 바람인데, 부디… 제발 대한민국의 국정농단 사건이 오페라화 되는 일이 없도록 기도할 뿐이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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