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크고 작은 전쟁으로 암울했던 중세의 유럽에서 유독 빛을 발하던 도시 피렌체는 지금도 예술의 중심지이며 유럽 인문학의 중심지로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은 동경의 도시로서의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만큼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최근 다시 영화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10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다빈치 코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그림 속 단서를 따라가는 작가의 추리로 진행되는데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종교의 정설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의 전개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그 논란이 얼마나 심했는지 작가의 암살설까지 떠돌았을 정도였다. 이후 후속작으로 세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인페르노(지옥)’가 나왔으나 그 시절 시끄럽던 논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건과 현대의 인물들을 연결시키며 인간의 지적 호기심에 자극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인페르노’를 조금 살펴보자. 세상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70년 40억의 인구가 50년도 지나지 않은 올해에는 75억이 이미 넘었다.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삼은 인간의 DNA로 인해 세상을 파괴하는 동시에 스스로도 멸종위기에 처한 인간. 더 이상의 탐욕을 멈출 목적으로 천재 생물학자 ‘조브리스트’가 인구의 절반을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생산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바이러스의 행방을 두고 여러 무리의 추적이 시작되는데 어떤 이들은 많은 돈에 팔려 하고, 어떤 이는 통제해야 하는 질병으로, 어떤 이는 죽음을 통해 세상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구원의 도구로 바이러스를 갈구한다. 바이러스의 행방은 철저하게 코드화되어 퍼즐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만이 추적이 가능한 설정이다.

피렌체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에는 첫 번째 단서인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아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화가)’가 그린 ‘지옥의 지도’로 시작해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에서 ‘베키오 궁’으로 이어지는 비밀통로, 그리고 이어지는 엄청난 스케일의 500인의 방 벽화가 등장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던 벽화 ‘앙기아리 전투’ 위에 그려졌다고 유추되고 있는 ‘마르시아노 전투’ 벽화. 그 벽화 속 작은 깃발에 적힌 ‘CERCA TROVA(찾으라, 구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시인이었던 단테가 세례를 받았던 ‘산 조반니 세례당’에서 다시 찾은 단테의 얼굴 석고본, 그 밑단에 적혀진 단서, 베니스까지 이어지는 영화의 전개를 보며 피렌체라는 도시의 역사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된다.

이렇게 신비스러운 역사적 도시를 배경으로 만든 푸치니의 오페라 중 ‘잔니 스키키(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 1918)’가 있다. 부자인 부오조가 죽으며 수도원에 기부한 전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친척 모두가 작당하고 부오조의 죽음을 알리지 않은 상태로 유언장을 새로 쓰기로 한다. 그 과정에 속임수와 연기에 능했던 ‘잔니 스키키’가 죽어가는 부오조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아주 작은 금액 외에는 대부분의 재산을 ‘잔니 스키키’ 자신의 이름으로 남기는 엽기적인 일을 벌인다. 당시 사기죄는 손을 자르는 형벌을 받았기에 친척 중 그 누구도 잔니 스키키의 계략을 폭로할 수 없었고, ‘잔니 스키키’의 딸 ‘라우렛따’와 그녀의 약혼자 ‘리누치오’를 제외한 모두는 집에서 쫓겨나고 만다.

오페라의 마지막 ‘잔니 스키키’는 관객을 향해 말한다. "부오조의 재산은 더 좋은 일에 쓰일 겁니다. 죄를 짓기는 했지만 딸의 행복을 위한 일이었으니 제게 무죄 판결을 내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오페라가 끝난다.

본래 ‘잔니 스키키’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Inferno) 30번째 노래에 등장하는 실존인물이다. 사기꾼으로서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이 짧게 묘사된 잔니 스키키의 이야기에 상상력을 입혀 쓰인 ‘조바키노 포르차’의 대본에 ‘푸치니’가 음악을 붙여 오늘날의 오페라 <잔니 스키키>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유쾌한 진행과 해피엔딩으로 그려진 잔니 스키키의 이야기는 엄밀히 말해 단테의 생각에 따라, 어떠한 이유로도 남을 속이는 거짓말은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거짓말은 크든 작든 죄라고 말하는 13세기 시인 단테의 목소리가 21세기 대한민국에 던지는 충고처럼 들리는 것은 나 혼자 느끼는 바는 아닌 것 같다. 지난해의 혼란한 모습이 탐욕과 거짓말에서 시작되었기에 2017년 새해에는 새로운 각오로 거짓된 일을 멀리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신금호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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