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베네치아는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으며 오늘날에는 주로 운하·예술·건축과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도시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베네치아 주민의 대다수가 관광업과 유리·레이스·직물 생산 같은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베네치아 건축물은 다양해서 이탈리아·아랍·비잔틴·고딕·르네상스·마니에리슴·바로크 양식 등이 모두 나타난다. 수 세기 동안 베네치아의 사회·정치 중심지였던 산마르코 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으로 손꼽힌다.
나는 이번 여행을 기다리면서 퇴근길 동작구에 있는 상도터널을 지날 때마다, 인사동이나 삼청동 거리의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터널의 건너편, 골목길의 모퉁이가 내가 꿈꾸는 유럽의 어느 곳이길 바랐다. 터널과 골목을 걸으며 내내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다가 그 끝에서 살짝 미소 지었던 그 설렘으로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 눈앞으로 수많은 배가 지나가고 여행자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순간에 있으니 너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여기서 본 것과 닮은 들꽃 하나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베네치아의 건물과 운하를 연거푸 찍던 그녀는 아쉬운 표정으로 촬영한 사진을 넘겨보다가 날 보고 웃었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예뻐서 계속 찍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많이 찍었어요?”
“아뇨, 눈에 보이는 베네치아는 참 따뜻해 보이는데 사진엔 그 느낌이 없어요. 제가 사진을 제대로 못 찍는 탓이겠지만요. 사진 잘 찍으시죠? 좀 보여주세요.”
“저도 그냥 그래요. 이따 저녁 먹으면서 봐요.”
그녀와 함께 한참을 리알토 다리에서 배들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골목길을 따라 다시 천천히 숙소로 걸었다. 걷다 보니 오면서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눈에 보였던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땅에 가까운 것부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거리, 황량한 거리, 쓸쓸하고 서늘한 거리도 자신의 다리 부분은 어둠 속에 숨기고 얼굴에 불그스름한 빛을 받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변한다. 골목이 가장 따뜻해지는 시간은 해가 지고 어둠이 허리까지 차오르기 전 30분.
이 순간, 이 골목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안에선 반복되는 매일이 지루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이국의 땅에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하다니 이 간사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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