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가모의 오후, 캔버스에 아크릴, 32cm x 41cm, 2016
베르가모의 오후, 캔버스에 아크릴, 32cm x 41cm, 2016

 

[아츠앤컬쳐] 밀라노의 북서쪽에 위치한 베르가모는 두 개의 지역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언덕 위에 위치한 치타 알타(높은 시가지)이고 다른 하나는 치타 바싸(낮은 시가지)로 구분된다. 치타 알타는 베르가모의 옛 모습이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으며 치타 바싸는 넓은 평원에 자리한 현대적인 거리다. 두 마을은 푸니쿨라(Funicolare)라는 케이블카로 이어지는데 주요 볼거리들은 대개 치타 알타에 집중되어 있다. 베르가모는
롬바르디아 주의 모습도, 베네토 주의 모습도 아닌 베르가모만의 모습을 지닌 예술의 도시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작은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하고 바로 카메라를 들고 구시가지로 나섰다. 도시는 언덕에 있는 상부지역과 아래 하부지역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좁은 골목길의 풍경을 좋아하는 나는 상부지역에 어서 가고 싶었다. 천천히 걸어 도착한 구시가지의 모습은 여행 전에 예상한 바로 그곳이었다. 모퉁이가 궁금해지는 낡은 골목, 집집마다 걸린 화분과 장식, 오래된 나무문….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성당의 종소리는 유럽 여행에서 내가 소망하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터널과 골목을 몇 번이나 걸으며 내내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다가 그 끝에서 살짝 미소 지었던 그 설렘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었다.

아마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여기서 본 작은 화분과 빵 굽는 냄새, 길가에 핀 들꽃 하나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동행한 그녀는 빵집 앞에서 아쉬운 표정으로 촬영한 사진을 넘겨보다가 날 보고 웃었다.

“노을이 예뻐서 저도 저 위에서 몇 장 찍고 내려왔어요. 많이 찍었어요?”

그녀와 함께 한참을 해가 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도시를 싸고 있는 외벽 길을 따라 다시 천천히 하부 마을로 내려왔다. 그런데 걷다보니 올라오면서 보지 못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눈에 보였던 많은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땅에 가까운 것부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거리, 황량한 거리, 쓸쓸하고 서늘한 거리도 자신의 다리 부분은 어둠 속에 숨기고 얼굴에 불그스름한 빛을 받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변한다. 골목이 가장 따뜻해지는 시간은 어쩌면 해가 지고 어둠이 허리까지 차오르기 전 30분이 아닐까?

이 순간, 이 골목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안에선 반복되는 매일이 지루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이국의 땅에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하다니 내 줏대 없는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났다.

글 | 배종훈
서양화가 겸 명상카툰과 일러스트 작가. 불교신문을 비롯한 많은 불교 매체에 선(禪)을 표현한 작품을 연재하고 있으며, 여행을 다니며 여행에서 만난 풍경과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 놓는 작업을 하고 있다. 또, 현직 중학교 국어교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bjh4372@hanmail.net / www.facebook.com/jh.bae.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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