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이탈리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섬, 더 나아가서는 지중해에 떠 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를 자랑하는 시칠리아! 시칠리아 섬은 공식적으로 390개의 꼬무네(comune, 최소행정단위)와 약 5백만의 인구를 가진 독립된 행정자치 시칠리아 주이다. 행정자치주(regione)로서는 이탈리아에서 면적 상 가장 큰 주이기도 하다. 팔레르모(Palermo)를 선두로 카타니아(Catania), 메시나(Messina), 시라쿠자(Siracusa) 등 유수의 시칠리아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도시들이 짙푸른 지중해와 어우러져 시칠리아 섬의 가치를 더욱 빛낸다.
이번 글에 소개할 포르토팔로 디 카포 파세로(Portopalo di Capo Passero 이하 포르토팔로)는 시라쿠자 현 관할구역 중 하나로 시라쿠자로부터 남쪽으로 58km 떨어진 시칠리아 섬 최남단 작은 바닷가 마을이다. 포르토팔로 끝자락 해변에서 손에 닿을 듯 몇백 미터 안 되는 곳에 위치한 작은 두 섬, 카포파세로 섬(Isola di Capo Passero)과 코렌티 섬(Isola delle Correnti)도 이 지역 관할에 포함된 두 섬이다.
필자가 사는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 공항에서 시칠리아 카타니아(Catania)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반 정도. 시칠리아 중동부에 위치한 카타니아 공항에서 최남단 포르토팔로까지는 110km, 차로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된다. 공항을 빠져나와 저 멀리 신비스럽게 펼쳐지는 시칠리아 섬의 명소, 활화산 에트나(Etna)에 잠시 정신을 빼앗긴다. 시칠리아 섬은 필자도 처음 방문하는 여행지로 그 어느 곳보다도 흥미로운 기대에 가득 차 목적지인 포르토팔로를 향했다.
4천 명도 안되는 주민으로 형성된 시칠리아 섬 최남단 작은 바닷가 마을 포르토팔로는 여느 유명 바닷가 관광지역과는 달리 한가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한여름 내리쬐는 태양 속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선선한 바람으로 그늘에 있으면 살짝 한기까지 느껴진다. 한 주민에게 물어보니 흐름이 다른 두 바다가 마주치는 곳에 마을이 위치해 있는 관계로 일 년 내내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일광욕을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정말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필자도 일광욕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마니아인지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해변에 나가 있는데 선선한 바람이 끊임없이 머리카락을 날리니 강한 햇볕 아래에서도 조금도 힘들지 않다.
포르토팔로 끝자락에 위치해 뾰족이 뻗어 있는 최남단 모래사장에서 코앞에 바라다보이는 섬, 카포파세로! 한때는 포르토팔로와 연결된 반도였지만 지금은 이오니아해에 중간이 잠겨서 길이 1,300미터, 너비 500미터의 작은 섬이 되었다. 해변에서 섬 가까운 지점까지 물이 얕은지라 수영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배를 타지 않고도 자력으로 도착할 수 있는 육지에서 정말 가까운 섬이다.
이 작은 섬이 한때는 포르토팔로의 경제와 군사에 관련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었다. 섬 중간에 돌로 지어진 몇 채의 아주 오래된 단층집들이 눈길을 끈다. 13세기에 지어졌다는 이 건물들은 지금 옛날 모습 그대로 방치돼 버려져 있지만 20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에 의해 사용됐다고 한다. 이곳은 참치잡이 배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근해에서 잡은 참치를 참치작업장에 내려놓고 여기 돌집에 배들과 각종 참치잡이 도구들을 안전하게 보관해 두었다고 한다. 아직도 나무로 짜진 옛날 배들이 몇 척 그대로 남아 있고 참치잡이에 이용된 각종 쇠사슬과 도구들이 시커멓게 세월을 먹으
며 이 마을의 참치잡이 산 역사를 그대로 전해준다.
작은 배로 카포파세로 섬까지 여행객의 왕복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는 한 현지인에게 시칠리아의 많은 중소 참치작업장이 폐쇄된 이유를 넌지시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이탈리아 경제가 좋아지면서 사람들의 여가문화에도 큰 변화가 찾아와 요트를 즐기는 인구가 급격히 늘어 시칠리아 근해에도 많은 요트들로 성황을 이루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인근 바다에서 잡히던 많은 양의 참치들이 더 이상 잡히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로는 참치 작업에 드는 인건비가 절상하면서 더 이상 경제적 여건이 맞지 않아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하여 지금은 소수의 공장에서 현대적 시설을 갖추고 시칠리아의 참치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카포파세로 섬에는 이 참치잡이 배 정박소 외에도 군사시설인 작은 요새가 볼거리로 있고 포르토팔로 마을 전경이 바라다보이는 작은 해변과 바닥까지 훤히 내려다보이는 맑은 바다가 매력적이다.
포르토팔로 마을의 톤나라(Tonnara, 참치작업장)는 참치잡이 배를 보관하는 카포파세로섬 돌집에서 훤히 바라다보이는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다 앞 바위 위에 멋들어지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참치잡이 배 보관소와 마찬가지로 베이지색을 띠는 이 지방 돌들을 이용해서 심플하고 소박하게 지어진 톤나라는 이제 하나의 시칠리아 역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독특한 시칠리아의 유적지로서 존재가치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에 오랫동안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시칠리아의 톤나라 모습은 시퍼런 시칠리아 바다와 함께 어우러진 가장 인상에 남는 흥미로운 유적지로 필자를 매료시킨다. 밤새워 잡아 온 참치를 기쁘게 내렸을 톤나라 바다쪽 입구까지 작은 배로 들어가 보았다. 잠시 톤나라에서 펼쳐지는 그 당시 흥분된 작업 모습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정말 진풍경이었으리라!
지금은 모두 공장 현대화 시설로 모든 작업이 시스템화되어 편해져 좋겠지만 역시 옛 방식의 수작업 진풍경은 우리들의 마음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오래도록 남는다. 서민 삶의 현장이었던 톤나라 참치 작업장 바로 옆 절벽에 한때는 이 지역의 중심 연회장으로 쓰였던 타후리 성(Castello Tafuri)이 우뚝 솟아 톤나라와 대조를 이루며 포르토팔로 작은 바닷가 마을의 가치를 높인다.
1933년 브루노 디 벨몬테(Bruno di Belmonte) 후작에 의해 건축이 시작되어 1935년에 완성을 본 타후리 성은 피렌체의 한 건축가에 의해 코렌티 섬에서 채석한 돌만을 이용해서 리버티 스타일(Liberty Style)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50년대 말에 타후리 가문에들어간 성은 결혼식, 신년 파티, 카니발 축제 등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며 포르토팔로 마을의 화려한 사교장 및 예식장으로써 마을을 빛내던 시절이 있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외관만 즐길 수 있을 뿐 굳게 출입문이 닫힌 채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시칠리아 섬 전 지역의 가장 큰 공통적인 매력은 짙푸른 지중해와 더불어 뭐니 뭐니해도 감칠 맛 나는 각종 시칠리아 음식! 어떤 이탈리아 지역보다도 음식문화가 잘 발달하여 시칠리아 음식이 최고라는 소문이 이탈리아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자한데 소문 그대로 정말 시칠리아 맛나는 먹거리에 매일 기분이 좋았다. 항구에 들어오는 고기잡이 배에서 좋은 가격에 직접 구입한 각종 생선, 해물에 유명한 시칠리아 파키노(Pachino)산 방울토마토를 이용한 다양한 파스타는 시칠리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이 섬의 풍요로움 그 자체이다.
한여름 휴가지로써 관광객이 별로 붐비지 않는 시칠리아 남쪽 끝 작은 바닷가 마을 포르토팔도에서 지중해 바다와 뜨거운 태양, 선선한 바람, 풍부한 먹거리, 친절한 지역주민들과의 담소를 즐기며 가끔은 주변에 산재해 있는 노토(Noto), 시라쿠자(Siracusa)와 같은 역사적인 명소 도시를 관광하며 보내는 휴가 여행은 그 어떤 여행보다도 알차고 릴랙스한 여행이 되리라 확신한다!
글·사진 | 김보연
아츠앤컬쳐 밀라노특파원, 日本女子大學 卒業, 문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