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의 숨결이 머문 도시
[아츠앤컬쳐]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Veneto) 주에 위치한 인구 260만의 베로나 시는 예부터 교통의 요지로 다양한 상업이 발달하면서 무역의 중심지로서 베네토 주의 가장 부유한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는 농산물에 관련된 다양한 식가공품 산업 특히 포도재배와 와인 생산이 크게 발달했으며 그 밖에도 가구생산과 붉은색을 띠는 베로나 대리석, 직물, 패션 등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는 도시가 되었다. 하지만 베로나의 진정한 풍요로움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될 만큼 가치 있는 고대 중세 건축예술의 아름다움에 있으며 매년 전 세계에서 3백만의 여행객들이 베로나의 독특한 매력을 찾아 몰려드는 관광도시로서 그 명성이 더 높다.
관광명소가 산재해 있는 베로나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펼쳐지는 브라(Bra) 광장은 베로나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심 광장으로 베로나 도시의 상징인 아레나(Arena di Verona) 야외 원형극장이 위치한 곳이다. 그밖에 베로나 시청으로 이용되고 있는 바르비에리 건물(Palazzo Barbieri/1836~1848)과 문화예술 전시 이벤트장으로 쓰이고 있는 그란 과르디아 건물(Palazzo della Gran Guardia/1609~1853)이 주요 고건축물로 광장을 지키고 있다. 광장 입구 바로 왼쪽으로부터 시작되는 형형색색 고풍의 레스토랑, 바 건물들은 광장이 끝나는 쇼핑가 골목 입구까지 광장을 따라 길게 주변환경과 대조적으로 드리워져 브라 광장의 매력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한다.
그럼 여기서 베로나의 역사적 중심 심볼인 아레나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아레나는 고대 로마 1세기경에 건축된 야외 원형극장으로 그 당시 가장 앞선 건축기술로 지어진 의미깊은 고대 로마 건축문화예술의 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 로마 유적 중에서도 그 보존상태가 아주 뛰어나서 매년 오페라 축제 공연장으로 세계 속에서 그 위세를 당당히 떨치고 있다.
아레나 오페라 축제는 매년 6월 중순경에 시작돼 9월 초순까지 그 성대한 공연이 이어진다. 2014년 아레나 공연에서는 아이다, 카르멘, 투란도트, 마담 버터플라이, 로미오와 줄리엣 등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오페라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가 준비한 베르디 노래, 로베르토 볼레(Roberto Bolle)의 클래식 발레 등이 다양하게 선보여진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독자라면 한 번쯤 큰맘 먹고 베로나의 아레나 오페라 공연을 관람해 보길 적극 추천한다. 오페라가 주는 강렬한 정신적 기쁨보다 더 강렬한 고대 로마 아레나의 초환상적인 분위기가 평생 잊지 못할 경이로운 추억을 선사해 줄 것이다.
브라 광장이 끝나는 왼쪽 모퉁이로부터 시작되는 베로나 최대 쇼핑 거리 Via Giuseppe Mazzini에 줄지어 있는 현대 감각의 세련된 상점들을 정신없이 구경하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왼쪽으로 길게 뻗은 야외 상설 시장인 또 하나의 광장과 마주친다. 이름하여 이탈리아에 존재하는 광장 중 세계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광장 중 하나라고 일컬어지는 Piazza Erbe(에르베 광장). 베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으로 고대 로마 시대에는 베로나의 경제적, 정치적 중심지였던 곳이다. Erbe(약초)라는 광장 명칭은 중세시대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당시에는 약초를 파는 시장으로 광장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 명성답게 에르베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 벽에 그려진 오래되어 헐고 색깔 바랜 고풍 향기 물씬 풍기는 프레스코 벽화에 마음을 빼앗긴다. 16세기 당시 베로나에서 유행했던 프레스코 벽화, 특히 마쟌띠 집들(Case Mazzanti) 벽에 그려진 신화적이고 우화적인 프레스코화는 에르베 광장 분위기를 모방할 수 없는 경이로운 중세 시대 분위기로 이끄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프레스코 벽화와 더불어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에 우뚝 솟은 Madonna Verona 상이 있는 분수로 서기 380년경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유적이다. 두루마리 종이를 펼쳐 들고 있는 흰색의 마돈나가 색색의 주변 프레스코 벽화 건물들과 어우러져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밖에도 에르베 광장은 Palazzo Maffei(마페이 건물), Leone di San Marco(산마르코 사자상), Torre dei Lamberti(람베르티 탑), 각종 예식이 거행되던 Tribuna(기둥이 있는 작은 단상)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물 유적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층 더 가치 있는 명소로 자리매김한다.
이곳 에르베 광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우리에게도 너무나 잘 알려진 세기의 러브스토리 주인공 줄리엣의 집이 있다. 아레나와 더불어 베로나 도시 아이콘인 ‘줄리엣의 집(Casa di Giulietta)’을 보기 위해 한해에도 수백만의 여행객들이 베로나를 방문한다. 알려진 대로 이 집은 줄리엣이 정말 살던 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 사람들의 가슴에 애절한 낭만으로 남아 로미오와 줄리엣의 숨결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곳이 되었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여행객들의 사랑 서약 낙서들, 뜰 안 철문에 채워진 수많은 자물쇠 사랑언약, 줄리엣 동상의 유방을 만지면 영원한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여 수백, 수천만의 손길이 그녀의 가슴에 머물다 가서 허옇게 색깔 바랜 그녀의 가녀린 오른쪽 젖가슴… 우리네 인생에서 사랑이라는 명제는 모든 이들의 감정을 강력하게 뒤흔들어 놓는 마약과도 같은 존재인가 보다!
베로나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길이 410km 이탈리아 제2의 긴 강 아디제(Adige).
아디제 강 위에 놓여진 많은 다리 중에 베로나 스칼리제라(Scaligera) 가문에서 1354년에 건축한 카스텔베끼오(Castello di San Martino in Aquaro 일명 Castelvecchio) 성의 비상 탈출구로 쓰였던 카스텔베끼오 다리는 베로나에 있는 그 어떤 교각 건축물보다도 위엄있고 멋지다.
한때 베로나를 지배했던 스칼리제라 귀족가문의 요새였던 카스텔베끼오 성과 아디제 강을 배경으로 건축된 카스텔베끼오 다리의 아름다움을 찾는 여행객들은 독특한 이 다리의 매력에도 빠지지만 덤으로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성 건물 안에 전시된 베로나 조상들의 수많은 그림 업적에도 큰 감명을 받는다.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중세 베로나에서는 프레스코 벽화가 유행했었는데 그 당시 많은 작품들을 이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베로나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람베르티 탑(Torre dei Lamberti)에서 내려다보이는 장엄한 베로나 구시가지 전경이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람베르티 탑은 높이 84m로 베로나에서 가장 높은 탑이며 에르베 광장 입구 우측에 위치한 라죠네 건물(Palazzo della Ragione)을 통해 탑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다.
연한 적색 지붕들이 물결치듯 베로나 구시가지 전체를 덮고 있고 그 구시가지 전체를 감싸고 도는 아디제 강의 유유한 흐름도 볼 수 있다. 탑 바로 아래에는 에르베 광장과 시뇨리 광장의 전체적인 모습이 훤히 내려다보이며 남서쪽으로는 고대 로마 시대의 아레나 야외 원형 극장도 그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키고 있다. 베로나의 모든 저명한 유적지를 다 돈 다음 마지막으로 람베르티 탑에 올라가 전체적인 베로나의 도시구성을 관조하며 도시 전체가 보이는 전망대만이 줄 수 있는 확 트인 장엄한 아름다움에 빠져 한동안 그렇게 탑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래 기억될 멋진 추억을 만드는데 의미 있으리라 본다.
글·사진 | 김보연
아츠앤컬쳐 밀라노특파원, 日本女子大學 卒業, 문화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