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니제티 극장 외관
도니제티 극장 외관

 

[아츠앤컬쳐] 필자가 사는 곳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서 북동쪽으로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12만의 작은 소도시 ‘베르가모(Bergamo)’이다. 베르가모를 작은 소도시라 표현했지만 이탈리아에선 보통 크기의 도시이며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주에선 밀라노 다음으로 여행객 방문이 많은 중요한 도시이다. 언젠가 기회를 잡아 아름다운 ‘베르가모’ 도시에 대해서도 꼭 한번 소개할 예정이다.

성악과 오페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돈 파스콸레’, ‘연대의 딸’, ‘안나 볼레라’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의 한 사람인 도니제티를 기억할 것이다. 빈첸초 벨리니, 로시니와 더불어 19세기 전반 벨칸토 오페라를 주도했던 ‘도메니코 가에타노 마리아 도니제티(Domenico Gaetano Maria Donizetti)’는 베르가모가 낳은 영광스러운 인물로 이곳 베르가모의 자존심이다.

도니제티 생가 외부 전경
도니제티 생가 외부 전경

 

이렇게 도니제티의 오페라는 세계적인 성공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처절한 개인 가족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지탱하다 비참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불행한 인생은 그의 오페라를 듣는 음악가들조차도 잘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도니제티 생가 내부
도니제티 생가 내부

도니제티는 1797년 11월 29일,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베르가모의 한 가난한 전당포 관리인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다행히도 도니제티의 음악적 재능은 베르가모를 대표하는 가톨릭 성직자 마이르 신부에 의해 발견되어 그의 후원으로 음악 인생을 걷기 시작한다. 마이르 신부가 이끄는 교회 성가대에서 음악활동을 하다가 볼로냐 필라르모니코 음악원에 입학한 도니제티는 이곳에서 푸가와 대위법을 철저히 공부하는 한편, 아버지의 소망대로 교회음악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 많은 종교음악을 작곡하며 노력해 보지만, 그의 천성과 재능은 오페라에 있었다.

1830년 밀라노 카르까노(Carcano) 극장에서 상영된 <안나 볼레나(Anna Bolena)>가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유럽은 물론 대서양 넘어 미국에까지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당시 최대의 극작가 펠리체 로마니(Felice Romani)의 대본에 의한 매력적인 희가극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이 또다시 크게 성공을 거둠으로써 도니제티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실상부 ‘벨칸토 오페라’ 대가의 한 인물로서 자리를 굳히게 된다.

도니제티의 초상화
도니제티의 초상화

도니제티를 말할 때 ‘벨리니(Bellini)’와 ‘로시니(Rossini)’를 함께 거론하며 ‘벨칸토 오페라’의 3대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른다. 도니제티 오페라 음악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벨칸토(Bel Canto)’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벨칸토(bel canto)’란 이탈리아어 의미 그대로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데 치중하는 발성법'을 가리키는 창법의 일종이다. ‘벨칸토’라는 용어는 16세기 말부터 존재해 왔지만 17~8세기를 거치면서 발전하다 도니제티가 활동했던19세기 전반에 가장 주목을 받는 오페라의 창법으로 대두한다.

도니제티 박물관 내부
도니제티 박물관 내부

벨칸토 오페라의 대표적인 걸작 아리아인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광란의 아리아’를 들으면 알 수 있듯이 벨칸토 창법은 성악가가 발휘할 수 있는 극한의 기교를 총동원해 노래하는 것으로 치밀한 성량조절, 유연한 레가토, 화려한 기교가 중요시된다. 벨칸토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중 한 사람인 ‘마리아 칼라스’는 ‘벨칸토란 목소리를 악기처럼 최대한도로 활용하고 제어하는 기법’이라고 정의했는데 이것은 마치 인간의 목소리로 악기들의 기교와 겨루는 시도가 이루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니제티 극장 내부
도니제티 극장 내부

도니제티는 <사랑의 묘약> 이후에도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계속적인 성공으로 벨칸토 오페라 거장으로서 유감없이 실력을 발휘하며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지만 음악을 뺀 그의 인생은 ‘비참함’ 그 자체인 정신적 고통의 연속으로 음악은 유일한 그의 삶의 의미이자 치료제로서 그의 인생을 지탱한다. 어린 첫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시작된 그의 인생의 불행은 전염병 콜레라로 둘째 딸과 부모를 잃는 더 큰 불운으로 이어지고 2년 후인 1837년 7월 30일에는 마지막 남은 가족인 아내와 막내딸까지 다시 콜레라 병으로 잃음으로써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도니제티 극장 러시아 발레단 공연
도니제티 극장 러시아 발레단 공연

프랑스로 활동 무대를 옮기며 새롭게 삶을 영위하려고 노력하지만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실감으로 인한 그의 정신적 고통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그를 점점 폐인으로 만들어 간다. 도니제티의 이와 같은 가족사의 처절한 불행은 그의 정신 건강을 급속하게 쇠퇴시켜 만성두통, 신경쇠약, 정신착란 및 발작으로 이어져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한다.

도니제티 극장 러시아 발레단 공연
도니제티 극장 러시아 발레단 공연

친척의 도움을 받아 베르가모로 다시 돌아와 요양 생활을 시작한 도니제티는 끝내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848년 4월 8일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세계적으로 많은 찬사와 사랑을 받으며 사회적 성공을 거둔 그이지만, 한 많은 인생을 살았을 도니제티의 처절한 슬픔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나마 도니제티의 영혼은 고향 땅 유서 깊은 교회(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안에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평온한 안식을 취하고 있음이 그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베르가모 도시 중심에는 도니제티의 생가를 비롯하여 도니제티 박물관, 도니제티 극장 등 베르가모 사람들의 도니제티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산재해 있다. 도니제티 음악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이탈리아 여행 시 밀라노를 거쳐 그의 영혼이 숨 쉬고 있는 베르가모 나들이를 계획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여유를 갖고 며칠 묶으며 도니제티가 살다 간 베르가모의 매력에 흠뻑 젖어 본 후에 듣는 그의 음악은 더욱 애절하며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릴 것이다. 한 음악가의 진정한 음악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인생 여정을 가슴으로 쫓는 과정이 절대 필요하리라 생각해 본다.

김보연
아츠앤컬쳐 밀라노특파원, 日本女子大學 卒業, 문화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Arts & Cultur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