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장단에 추는 춤
1935년 6월 24일 오후 2시 51분, 콜롬비아 메데인으로 향하던 SACO ford 5의 추락은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주었다. 조국의 자랑이자 영광이던탕고(Tango)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을 잃었기 때문이다. 가르델과 동료 작사가 레 페라(Alfredo Le Pera)는 해외 공연차 함께 비행기에 올랐는데 그 이후로 두 사람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둘은 마치 거짓말처럼 인생의 최정상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으며, ‘포르 우나 카베사’만이 그들의 유작처럼 남겨졌다.
간발의 차이, 말의 머리 한 끗 차이를 나타내는 ‘포르 우나 카베사’는 경마 중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한 남자의 심정에 사랑을 빗댄 노래이다. 남자는 매번 한 끗 차이로 돈을 잃으면서도 일요일엔 다시 경마장으로 달려가듯 자신을 농간하는 아름다운한 여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마치 뒤처진 채로 우승마를 쫓아 달리는 경주마처럼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한 여인의 유혹에 넘어가고 버려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버려질 때의 좌절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좌절감은 다시 받아들여질 때의 행복감에 비할 바가 아니며, 천 번의 삶 역시 단 한 번의 입맞춤보다 나을 바 없기 때문이다.
“간발의 차이로 광기에 싸이네. 그녀의 입맞춤은 슬픔을
지우고 씁쓸함을 가라앉히네.
간발의 차이로 그녀가 나를 잊는다면 죽어도 상관없어.
천 번의 삶인들 사는 게 아니지.”
‘포르 우나 카베사’는 유독 영화의 명장면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탕고가 주는 강렬함 때문이다. <여인의 향기>, <쉰들러 리스트>, <트루 라이즈> 등 90년대를 장식한 이 대작들에는 하나같이 소란한 장내의 소음을 잠재우는 현(弦)의 ‘포르 우나 카베사’가 있다. 스크린에서는 반도네온의 어두움과 무게감이 부각된 아르헨티나식 편성보다는 주로 컨티넨탈 탕고의 밝고 유려한 선율이 애용되는데, 사실상 이들은 쓰임새 면으로는 동일하나 서로 다른 상황과 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아르헨티나 탕고는 라플라타강을 중심으로 이민자와 하층민 사이에서 향수와 노역의 시름을 달래기 위해 시작되었다. 반면 컨티넨탈 탕고는 아르헨티나 탕고가 유럽에 보급되면서 사교문화에 접목되는 과정 중 우아함과 화려함을 덧입게 된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탕고가 애환의 음악이라면 컨티넨탈 탕고는 유희의 음악이다. 이 한 뿌리의 두 음악은 각기 다른 여건에 따라 악기와 편성을 달리하며 동승하여 발전한다. 물론 영화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소란스럽고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강렬함을 끌어낼 수 있는 장면 음악으로는 유희적 편성의 ‘포르 우나 카베사’가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탕고는 가르델을 통해 상류층의 문화로 도약하며 세계적 입지를 다지게 된다. 가르델이 확립한 ‘탕고 칸시온(Tango Cancion)’은 춤을 위한 탕고에서 노래를 위한 탕고로의 전환을 가져온다. 바리톤의 미성과 작곡 능력, 극적 표현력과 대중성을 갖춘 가르델은 탕고 역사에 남을 수많은 노래들을 작곡하고, 노래하며, 유행시킨다. 그의 노래들은 깊은 음악적 영감을 반영하며 이는 다양한 음악의 뉘앙스를 이해하고 접목시키는 능력에서 비롯된다. 특별히 ‘포르 우나 카베사’는 서로 상반된 감수성 안에서 음악적 영감과 대중성을 융합시킨 작품이다. 예를 들어 A와 B로 나뉜 장조와 단조의 선율은 ‘도박과 여인에 빠진 남자의 익살 섞인 고백’과 ‘사랑을 위한 정열의 다짐‘을 대치하며 탕고 특유의 극(劇)성을 드러낸다. 이에 관객은 부드럽고 우아한 A 선율에서 흥미와 동정심으로 남자의 고백을 듣다가 격정적인 B 선율에서 피 끓는 정열에 동감하며 자연스레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된다. 여기서 가르델이 영감을 받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론도 K. 373의 삽입구는 절도 있는 탕고 리듬과 어우러지며 상행 셋잇단음으로 복받치는 감동을 이끌어낸다.
탕고는 상체와 하체의 분리(dissociation)로 창조되는 춤이다. 상체의 홀딩과 하체의 주된 동작으로 완성되는 춤이기에 심장은 항상 파트너를 향해 있고, 반면 다리는 자유롭고 크게 움직인다. 문득 분리에서 오는 자유의 아름다움이 가르델의 운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껏 강렬히 노래하다 한순간 사라진 그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그는 분명 운명의 장단에 춤을 추던 사람이었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