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진실 그리고 켈틱의 향기
[아츠앤컬쳐] 때로는 진실보다 아름다운 오해를 간직하고 싶을 때가 있다. 탐미(耽美)
는 사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름다운 음악에 관해서라면 사람들은 사실보다는 느낌을 중요시하며 대부분 그 느낌이 감상의 이유가 된다. 아일랜드의 대표적 민요로 알려진 ‘대니 보이’ 또한 이 경우에 속한다.
“오, 대니 보이, 백파이프가 울려 퍼지는구나, 골짜기와 골짜기 그리
고 산허리마다. 여름이 가고 꽃이 시드니 너는 가야하고 나는 남겠지. 하
지만 초원에 여름이 찾아올 때면 넌 돌아올 거야, 아니면 골짜기가 온통
눈으로 뒤덮일 때라도. 햇빛이 비치건 그늘이 드리우건 난 여기서 너를
기다릴 거란다. 오, 대니 보이, 널 정말 사랑한단다.”
아름다운 ‘대니 보이’의 노랫말은 아들을 멀리 외지로 떠나보낸 후 그리워하는 어버이의 심정이 담겨있어 잔잔한 여운과 울림을 준다. 더욱이 가사에서 언급되는 파이프 소리는 전원적인 느낌을 더하며 아일랜드 시골 마을의 정취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여기에 오음계가 두드러진 감상적 멜로디와 소박하고 서글픈 켈틱 사운드 그리고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가 겹쳐져 ‘한’의 정서와 맞닿은 동질감이 형성된다. 실제로 아일랜드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와 닮아있으며 그 가운데 정서를 반영하는 음악 또한 상당 부분 닮아있다.
그러나 흔히 아는 것처럼 ‘대니 보이’는 아일랜드 민요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며 이는 아일랜드 음악의 처연한 아름다움과는 무관한 사실이다. 사실상 ‘대니 보이’는 한때 ‘아일랜드의 민요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보는데 이는 그 멜로디가 북아일랜드 지역의 민요인 ‘런던데리 노래(Londonderry Air)’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가사는 1913년 잉글랜드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프레드릭 웨덜리(Frederic Weatherly)가 썼으며, 이 때문에 잉글랜드의 오랜 지배를 겪은 아일랜드인들은 ‘대니 보이’를 자신들의 민요로 여기지 않는다.
켈틱 음악(Celtic music)의 본고장인 아일랜드의 음악은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 위에 핀 꽃이다. 800년간의 잉글랜드의 식민통치와 1840년대 감자 대기근, 500만 명에 이르는 이민자들의 속출 그리고 독립으로 야기된 갈등과 북아일랜드 사태 등 아일랜드는 극한의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고 일어선 나라이다. 이 가운데 아일랜드인들은 본토건 외지이건 노래와 춤으로 고통과 아픔을 달랬으며 이 음악은 각국으로 흩어진 이민자들을 통해 세계로 전파되었다.
때문에 본토인의 화롯가에서 시름을 달래던 가정 음악은 이민자의 거취지역 내의 펍(pub) 음악으로 변모하였고, 여흥을 돋우며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주류문화와 밴드음악이 활성화되었다. 그중 아일랜드의 민요이자 가요인 아이리시 포크(Irish folk)는 영미권의 팝(pop)과는 구별된 민속음악으로, 명랑하고 올곧은 아일랜드인의 기질과 고난의 역사가 더해져 기쁨과 서글픔이 공존하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입게 된다.
아일랜드인의 삶과 애환을 대신한 이 음악은 크게 독립군가 풍의 레벨 송(rebel song)과 술과 여흥의 드링킹 송(drinking song), 자연과 사랑 노래, 이야기체의 발라드(ballad), 빠르거나 느린 기악 음악 등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아일랜드 음악을 독보적으로 만든 요인은 무엇보다 아이리시 하프(Irish harp), 율리언 파이프(Uilleann pipes), 보란(bodhran), 피들(fiddle), 틴 휘슬(tin whistle) 등의 전통악기들인데 이들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콘월, 브르타뉴 지역 등 켈트 문화권 내의 지역음악들에 공유되어 켈틱 음악의 독특한 사운드를 형성한다. 더불어 아일랜드 음악에는 오랜 전통의 션 노스(sean nós) 창법과 뉴에이지(new age) 풍의 자연적이며 신비한 느낌이 가미되어 민속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켈틱 음악의 진미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월드음악 시장 내의 켈틱 바람과 함께 레파토리엔 어느새 ‘대니 보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이는 아일랜드계 미국인들과 캐나다인들 사이에서 자주 불리며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곡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 클래식과 팝, 재즈 분야의 아일랜드 음악인들이 기꺼이 ‘대니 보이’를 음반에 수록하고 있지만 그러나 이는 자국의 민요가 아닌 세계인의 애창곡이라는 이유에서이다. 아일랜드인에게 ‘대니 보이’는 아직도 ‘런던데리 노래’의 아류이며, ‘대니 보이’와 아일랜드의 매칭(matching)은 근거 없는 오해로 간주된다.
그러나 ‘대니 보이’는 분명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이다. 북아일랜드인의 선율과 잉글랜드인의 가사가 혼합된 이 슬픈 노래는 그들에겐 고통과 갈등의 기억이지만, 우리에겐 꽃이 떨어질 무렵 떠난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다. 그리고 음악이 아름다움을 지니는 한 ‘대니 보이’는 오해와 진실마저도 향기로 승화시키는 진정한 신비의 노래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