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마름을 부추기는 샹송
작열하는 태양 아래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을 손에 들고 넘실대는 파도를 바라보는 것. 한여름 해변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더 멋진 일은 없다. 물론 철썩이는 파도 사이로 간간이 말을 나눌 친구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설령 혼자라도 맘에 드는 몇 곡의 노래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온갖 소리와 소음이 뒤섞인 여름 해변에서 천천히 바다로 기우는 태양을 바라보는 순간은 존재의 이유를 떠올릴 만큼 아름답다. 낙조의 해변, 그 모래더미 위에서 고동치는 가슴을 채워줄 음악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파도의 파장을 타고 술렁이는 ‘모나코’의 인트로(intro)를 꼽고 싶다.
샹송 ‘모나코’의 원제는 ‘28도의 그늘에서(28° à l'ombre)’이다. 장 프랑소아 모리스(Jean-François Maurice)의 내레이션으로 언급되는 이 구절은 모나코 해변의 무더위와 열감을 대신한다. 그늘 밖의 뜨거운 온도를 가늠케 하는 구절과는 달리 음악은 청량감을 주는데 아마도 거침새 없는 일렉기타의 시원한 주법 때문이라 여겨진다. 여기에 나지막한 매미 소리, 파도, 내레이션과 여성의 흥얼거림이 더해져 여름 해변의 정취가 묻어나며, 자연스레 감각이 아닌 감성으로 냉감을 체감하게 만든다.
프렌치 리비에라에 위치한 작은 나라 모나코, 유럽인들이 휴양지로 가장 선호하는 이곳은 샹송 ‘모나코’의 인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모나코’가 장 모리스의 대표곡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실상은 번안곡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원곡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마우로 죠르다니(Mauro Giordani)의 작품으로, 1978년 그룹 산디에고(Sandiego)에 의해 발표되었으며, 제목 또한 ‘모나코’가 아닌 ‘멕시코(Mexico)’였다. 남성 보컬과 코러스가 적절히 배분된 영어 가사의 ‘멕시코’는 70년대 라틴 록의 분위기를 고수한 채 담백한 개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같은 해 샹송 가수이자 작사가,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장 모리스는 원곡을 프랑스어로 개사하며 ‘모나코’란 제목으로 음반을 취입한다. ‘모나코’는 곧 원곡을 능가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되는데 여기엔 70년대 말 유행하던 남녀의 토크송 폼(talk-song form)과 꿈의 휴양지 모나코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작용한다. 한편으로는 남성적인 내레이션과 여성의 나른한 보컬 톤이 테스토스테론을 상승시킨다는 비하적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에로티시즘은 늘 그렇듯 음반 시장을 움직이는 키워드였다. 당시 유럽 대중은 이국적 혼합문화지인 멕시코보다는 화려한 부유층의 놀이터인 모나코를 선호했고, 이곳에서의 낭만적이고도 화려한 사랑을 꿈꾸었다.
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갈 곳을 물색하고, 스케줄을 짜고, 가방을 싸는 동안의 소소한 기쁨은 직접 여행지를 방문할 때 보다 더한 설렘을 준다. 팬데믹은 우리에게서 약간의 자유를 탈취해갔지만, 상상력까지 장악하진 못했다. 우리의 마음에는 이미 바다가 흐르고, 모래바람이 불며, 가장 행복한 순간의 소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샹송 ‘모나코’와 같이 우리를 전율케 하는 음악이 있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관련기사
- 맑고 앳된 사랑의 고백 논 오 레따 Non ho l'età
- 라 마리짜 La Maritza
- 포르 우나 카베사 Por una cabeza
- 라 팔로마 La Paloma
- 나의 고독 Ma Solitude
-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
- 오 샹젤리제 Les Champs-Élysées
- 검은 눈동자 Очи чёрные
- 대니 보이 Danny Boy
- 바다의 노래 Cancao do mar
- 관따나메라 Guantanamera
- 당신이 나를 사랑하는 날 El día que me quieras
-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
- 리베르 탕고 Libertan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