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훤한 보름달이다. 길에서나 주차장에서 하얀색 자동차가 주를 이루는 모습을 흔히 발견하게 된다. 뉴욕에서나 서울에서나 사람들은 여전히 검은색 옷을 선호하는듯하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사람들 무리엔 어느덧 검은색이 트렌드이다. 나는 주로 흰색을 즐겨 입는다. 훤하다. 시원하다. 밝다. 환하다. 예로부터 한국인들은 훤한 것을 좋아하여 훤. 환. 한. 하여 환국, 현재에도 한국이라 불리우고 있다. 밝음의 민족이라 하여 배달민족이라고도 불리고, 주로 나라 안에서는 흰색의 옷을 입었다 한다.

한국인들이 그리 흰색을 좋아해서인지 한국의 백자는 그 우아한 귀태와 구성진 소박한 맛을 올곧이 담아내고 있다. 그중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는 훤한 보름달을 닮은 항아리.

올림픽대로로 끝까지 가다가 춘천고속도로 미사리 팔당대교를 따라가다 보면 경기도 광주시 강변이 시원히 보이는 즈음 권대섭 작가님의 작업실이다. 언덕배기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면 고즈넉하니 지어진 집. 전통식 황토가마. 땔감 나무들과 도자기 조각들이 황톳빛 흙 위에 즐비하다. 달항아리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오는 그 모습이 훤한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달항아리라 불리우며 귀하게 여기었다. 둥글둥글한 달항아리는 크게 윗면과 아랫면을 따로 만들어 이어 붙이어 완성된다.

그 오랜 세월 백자 달항아리만을 구워내는 권대섭 선생님께서는 단 한 번도 같은 작품을 만난 적이 없으시다 한다. 어찌 그리 항시 같은 작업을 하느냐 하지마는 달항아리의 또 다른 맛은 작가의 손맛이 아닌가 한다.

입고 왔던 치마를 고이 벗어 접어놓고는 편안한 운동복 바지로 갈아입었다. 처음으로 흙을 밟아 보았다. 발바닥에 닿는 맛이 촉촉한 듯 보드랍다. 커다란 국화꽃을 만들듯 흙을 밟으며 흙 안의 기포들을 잡아낸다. 이번엔 충분히 밟은 흙을 적당량을 도려내어 손으로 한 번 더 치대고 문지르면서 도자기를 빚어낼 수 있는 흙으로 준비시킨다. 이기조 작가님께서 대학 도예과에 입학하여 처음 흙과 만나셨던 첫 경험… 발바닥으로 흙을 밟던 그 느낌은 평생에 잊을 수가 없는 경험이셨다고 한다. 흙이 이렇게 사람의 손과 만나면서 기운이 순화되고 작가의 기운이 담기어 작품으로 승화되는 과정들이다. 이에 윤광조 선생님께서 흙과 작가의 손과 함께한 ‘시간’의 귀함에 관한 말씀이 떠오른다. 예로부터 집안에 아픈 이가 있으면 훌륭한 작가가 만들어낸 달항아리에 물을 담아 아침저녁으로 마시게 하였다. 그만큼 그 기운이 강하고 맑고 오묘하다 하였다.

현대에 달항아리로 손꼽히는 권대섭 작가님의 성품은 천진한 아이와도 같으며 예와 흥을 즐기신다. 이기조 작가님과 함께한 점심자리에 만남이 흥에 겨워 기분 좋게 시작한 한잔은 따뜻한 차로 이어지고 멋들어진 알텍스피커 소리로 흘러간 팝과 가요를 들으며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지상낙원이 바로 이곳인 듯 흥이 났다. 소장하고 계신 조선백자를 만났고, 귀한 작품 감상이 이어졌다.

그 중 고모까이 이도다환을 만났는데 포장에서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하세다와라는 이름의 사발이었는데 포장 상자에는 도쿠가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일본의 호소까와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던 최고의 장군에게 선물 되어진 이 사발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 기운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무언가 모를 기운이 소용돌이 지는 것만 같
았다. 사발의 주인이었던 장군이 귀하게 여기며 항시 사용하였던 흔적이 찻물로 오롯이 배어있었다. 만나보았던 사발 중에 가장 진귀한 작품이었다. 권대섭 작가님은 훌륭한 작품을 만나면 스스로 어쩔 수 없는 끌림에 집에서 쫓겨날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적도 있으시다며 장난기 어린 말씀을 하신다.

사발은 흙과 작가의 손으로 빚어져 완성된 듯하나 실은 이를 사용하는 이의 기운으로 성장해 가고 그 기운을 담아간다. 흙으로 빚어진 도자기는 이렇듯 사람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다. 참으로 매력적이지 아니한가? 권대섭 작가님의 달항아리는 구수한 큰 맛을 담고 있다. 작가의 천진한 기운이 예와 흥이 배어 있는 질퍽한 사람의 큰 맛이 담겨있다. 미니멀하고도 화려한 현대인의 감성과 우리의 정서에 잘 어우러진다. 크고 잘생긴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백자 항아리. 그 훤함에 꾸미지 않은 구성진 편안한 넉넉한 맛에 삶의 여유를 느낀다.

글 | 장신정
아트 컨설팅 & 전시기획. 국제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큐레이터. 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 수석 큐레이터. 홍익대학교 강사. NYU 예술경영/행정 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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