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나에게 죽음의 의미는 먼저 저 세상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으로 오는 길을 예비하는 것이다.”
음유시인 만리코는 사랑하는 레오노라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는데…

만리코는 루나 백작의 조상에게 가족이 모두 살해된 집시 여인 아주체나에게 어릴 때 유괴되어 집시로 자랐다. 루나 백작은 만리코가 자신의 친동생인 줄도 모르고 레오노라를 놓고 사랑의 삼각관계가 된다. 그리고 만리코는 루나 백작과 싸우다가 아주체나와 함께 체포된다. 레오노라는 백작에게 자신의 사랑을 담보로 만리코를 석방시키고 자신은 독약을 먹고 자결한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루나 백작은 만리코를 체포하여 사형을 시키는데 아주체나로부터 만리코가 어릴 때 잃어버린 루나 백작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탄식하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2013년 11월 10일, 라벨라오페라단(예술감독 이강호)이 제작해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4막 오페라로 스페인 극작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치에레츠의 희곡 ‘음유 시인’(El trovador)을 기초로 살바도레 캄마라노와 레오네 에마누엘레 바르다레가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완성했고 1853년 로마의 아폴로 극장에서 초연되어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오늘 공연에선 정선영의 연출로 심플하면서도 상징성이 있는 현대적인 감각의 무채색의 무대세트와 조명, 의상이 돋보였고 균형감 있는 캐스팅으로 작품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다이나믹한 사운드의 합창과 양진모 지휘자가 이끈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잘 준비된 관현악 연주는 작품에 음악적인 안정감을 더해 주었다.

이날 공연에서 메조소프라노 김소영(아주체나 역)의 부드러우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노래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레오노라 역의 소프라노 이윤아는 피아니시모와 포르테를 겸비한 유연한 가창력으로 흡인력 있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만리코 역의 테너 윤병길은 이틀 연속 출연하는 일정 때문에 고음역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갖게 했지만 시종일관 부드러우면서 다이나믹한 목소리로 파워 넘치는 노래를 들려주었다.

루나 백작의 바리톤 장성일의 힘 있는 목소리 역시 인상적이었다. 올해는 베르디 탄생 200주년을 맞아 국립오페라단과 민간오페라단들이 베르디 오페라를 많이 선보였는데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립오페라단에 비해서 제작환경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도 작품성 있는 오페라를 꾸준히 제작하는 민간오페라단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특별히 라벨라오페라단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전반적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아주 높았다는 점이 매우 감동적이다. 이번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를 보면서 민간오페라단의 미래가 밝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2007년부터 카자흐스탄 잠빌국립극장 고문을 맡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음악평론가,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서울평생교육원에서 ‘전동수의 발성클리닉’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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