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985 년 가을,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Tutti dentro’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27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지금도 우리의 현실을 잘 반영해주는 영화이다. Tutti는 ‘모두’이고 dentro는 ‘안으로’를 뜻하는데 모두가 교도소에 간다는 제목의 코미디영화이다. 어느 부패사건을 담당한 검사가 수사를 하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수감되고 금융, 언론은 물론이고 정치인과 심지어는 종교계 인사까지 모두 잡혀들어간다. 이 영화는 수사를 맡았던 검사까지 부패사건에 연루되어 교도소에 들어가면서 끝을 맺는다.
우리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가 깨끗하지 못한 존재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을 보면서 이제는 나를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두가 감옥에 들어가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감옥에 들어가는 사람 중에는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걸리지 않았다고 깨끗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가 매일매일을 반성하면서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우리가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보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통을 받는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당연하고 이것이 참회의 길이다. 남을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겸손이다.
요즘의 성폭력을 포함한 청소년 문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어린이를 포함한 성폭력이 난무하고 성매매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무차별로 뿌려지고 있다. 또한 “돈이면 다 된다.”라는 사고가 팽배해져 있다. 인성교육보다는 입시교육을 중요시하는 교육풍토가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의 사고를 병들게 하고 있다. 입시와 관계가 없는 문화예술을 포함한 교양과목은 이미 찬밥신세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입시에 있어서도 정상적인 학교 교육보다는 사교육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돼버렸다.
이쯤이면 학교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 보다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함을 깨우쳐 주는 것이 교육의 몫이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으며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는 돈을 아끼지 않으면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유지시켜주는 문화생활에 인색한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음악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즐기고 정신적으로 여유 있는 삶을 사는 내가 부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이제는 삶에 지친 이웃을 위해 문화예술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기를 각오한 자는 산다”는 말이 있다. 남을 위해 사는 삶은 남을 행복하게 만들고 나 자신도 행복한 삶을 살게 해주며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를 아름답게 만든다. 나보다 남을 앞세우며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을 나누는 사회가 진정한 천국의 모습이 아닐까.
옛 성현들은 일찍이 황금이 우상화되는 것을 경고했다. 돈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물질을 완전히 배제한 삶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물질과 정신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신적인 삶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황금만능주의로 세상이 각박해지는 이 사회가 문화예술을 통해 순화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글| 전동수 발행인
국내에서는 음악평론가, 예술의전당 비전위원,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 아츠앤컬쳐 발행인으로 활동중이다. 해외에서는 카자흐스탄 잠빌국립극장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서울평생교육원에서 ‘전동수의 발성클리닉’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