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별 헤는 밤
                                                                              -  윤동주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 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거외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입추가 지난 8월 12일,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오후 2시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리는 근대가무극(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를 보기 위해 평소에 공연을 함께 보는 지인들과 극장로비에서 만났다. 창작뮤지컬이라서 그런지 다들 큰 기대감은 없어 보인다. 라이센스 뮤지컬이 대세인 요즘 창작뮤지컬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일행은 오페라극장 2층 B블럭 5열에 자리를 했다. 별 설렘 없이 막이 오르기를 기다렸다. 1부는 70분, 휴식 20분, 2부 65분이 소요된다는 장내방송이 끝나자 막이 오른다. 막이 열리자 주인공 박영수(윤동주 역)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이고 극장에 울려 퍼지는 영롱한 피아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을 봤을 때 사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것처럼…

일제식민지의 암울했던 시기에 지성인으로 겪어야 했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시로 읊어낸 윤동주의 삶을 그려낸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는 총 22개의 넘버로 구성되었는데 한마디로 작품의 완성도가 매우 높았다.

북간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학을 하던 중에 민족의식을 심어주는 ‘의식화’ 작업을 했다는 죄목으로 붙잡혀 일제의 감옥 안에서 28세의 나이로 절명했던 시인 ‘윤동주’의 삶을 보여준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는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권호성의 무대연출과 서정성이 느껴지는 오상준의 음악으로 더욱 빛이 났고 잘 준비된 서울예술단 단원들의 춤과 연기, 노래는 관객이 감동을 받기에 충분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윤동주를 대표하는 시로 잘 알려진 ‘별 헤는 밤’을 박영수가 절규하듯이 읊어 내려가는 장면에서는 슬픔이 북받쳐 오르고 눈시울을 적시우게 만든다.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느껴졌던 시가 이런 슬픔을 담고 있었다니… 이미 국내에서 제작된 창작뮤지컬도 있지만 ‘윤동주, 달을 쏘다.’는 한국 뮤지컬이 이젠 제대로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해주었고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연을 보기 전부터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우리에게 친숙한 윤동주시인이 왜 달을 쏘았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달’은 윤동주가 시를 쓰거나 사색하는 밤에 언제나 함께 하며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동시에 조선을 강압하던 일제의 무게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국내에서는 음악평론가, 예술의전당 비전위원, 대한적십자사 미래전략특별위원,
아츠앤컬쳐 발행인으로 활동중이다. 해외에서는 카자흐스탄 잠빌국립극장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한신대학교 서울평생교육원에서 ‘전동수의 발성클리닉’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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