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ayoi Kusama at Whitney Museum

© Yayoi Kusama
© Yayoi Kusama

 

[아츠앤컬쳐] 무수한 물방울무늬 작업으로 유명한 일본 여류작가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 b.1929)는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단지 나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예술작업을 할 뿐이다.” 라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질환을 앓아온 그녀는 마음의 병을 예술로 승화시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다. 15년의 화려한 뉴욕 활동을 접고 1973년 이후 현재까지 자신이 선택하여 정신병원에 거주. 병원 옆 작업실에서 페인팅, 콜라주, 조각, 퍼포먼스, 환경설치작업 등 다양한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작업세계를 펼쳐오고 있다.

뉴욕 위트니 뮤지움과 런던 테이트 모던 전시를 포함하여 10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20여 권의 소설과 시집을 출간하였다. 200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그녀의 첫사랑으로 알려지기도 한 세계적인 미니멀 아티스트,도널드 주드(Donald Judd)가 소장하였던 작품 ‘Infinity Net’이 510만 불에 낙찰되면서 살아있는 여류작가로 최고가의 경매기록을 경신하였다.

© Yayoi Kusama
© Yayoi Kusama

현재 위트니 뮤지움에서 9월 30일까지 열릴 예정인 쿠사마 개인전에서는 작품의 시기별 변화를 확연히 볼 수 있다. 그녀의 초기작품은 어둡고 암울한 색조 속에서 우주가, 소우주라 하는 인체 내부의 조직체들이, 생물체들이, 그녀의 무의식들이, 보석과도 같은 은밀한 경이로움이 터져나갈 듯 섬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쿠사마의 작품은 현시대에 참으로 인기가 대단하여 많이도 보았건만 그녀의 자그마한 초기작품들은 그 어떤 고가의 유명한 페인팅, 조각품들보다 매혹적이었다. 그 안에 이미 모든 것이, 그녀가 평생에 걸쳐 뿜어내고 있는 작품의 모든 요소들이 다 포함되어있었다.

뉴욕활동시기에는 평면작업에서 입체작업인 조각, 설치에서 퍼포먼스, 해프닝작업까지 초기작품에서 보여지는 여러 요소들이 그 시대의 흐름과 만나 용트림을 하듯 다양한 형태들로 토해져 나와있었고, 후기작품으로는 초기작업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하고 강렬한 색감의 작품들이 설치되어있다.

© Yayoi Kusama
© Yayoi Kusama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던 야요이 쿠사마는 자살을 기도한다. 전쟁상황 속에 소녀시절을 보내던 그녀는 편집적 강박증에 환각현상을 경험하고 심한 착란증세와 발작을 일으킨다. 보수적이며 권위적이던 그녀의 어머니는 그런 딸에게 교육의 부족을 탓하며 체벌을 가하였다. 아버지마저 딸과 자신에게 가혹하기만 하던 아내를 견디지 못하여 집을 나가고 쿠사마는 자신의 병을 이해받지 못한 채 깊은 상처 속에서 성장한다.

열살 무렵 쿠사마는 빨간 꽃무늬 식탁보를 보고 그 잔상이 온 집안에 따라다니다 물방울 무늬로 변형되어 계속 그녀 자신의 신체에까지 둥둥 떠다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무수한 동그라미의 환영은 그녀의 작은 도화지에 옮겨졌고, 그렇게 만나게 된 물방울 무늬는 평생에 걸쳐 쿠사마 예술작업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다. 그녀 속에서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던 편집증, 강박증, 착란증세는 곪을대로 곪아 밖으로 터져 나왔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통해 자기치유를 시작하였다.

1952년 시민회관에서 열린 쿠사마의 전시를 본 정신의학 교수 니시마루 시호 박사는 쿠사마의 예술적 재능과 광기를 발견하였고 그녀는 시호 박사로부터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호 박사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또 그녀의 작품활동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신의학은 쿠사마의 부모가 그녀에게 주지 못했던 자기표현의 정당성과 미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도쿄, 프랑스에서 생활하던 쿠사마는 1957년 미국으로 이주. 시애틀에서 1년간 머물다가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금세 반전, 성 해방, 동성애, 인권 등 정치 사회문제의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하였던 아방가르드 운동의 선두주자로 유명해지기 시작했고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도널드 주드, 이바 헤스(Eva Hesse), 조셉 코넬(Joseph Cornell)과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 시기에 쿠사마는 과로로 종종 병원신세를 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작업활동을 하였다. 1966년부터 쿠사마는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다양한 전위적인 해프닝(happenings) 작업을 하였는데, 그녀와 함께하던 무용수, 히피들의 나체에 물방울 무늬를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경찰에 의해 중단되기도 하였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받지 않은 채 베니스운하에 1,500개의 거울로 만든 반짝이는 공을 설치, ‘나르시스 정원’이라 이름하고 금색 기모노를 입고 공 한 개당 2불에 판매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쿠사마는 미디어를 활용할 줄을 알았고 시대의 흐름과 유행을 읽고 만들어내는 재주 또한 대단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시켜 <쿠사마 스튜디오>라 이름하였고, 가슴에 두 개의 구멍을 뚫어 제작한 드레스를 선보이며 <쿠사마 패션 컴퍼니>를 오픈, 자신의 시집 소설을 출간 <쿠사마 오르지> 잡지를 창간하였다. 그녀의 해프닝들은 져드 얄쿠트 감독에 의해 ‘쿠사마의 자기소멸’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수많은 물방울, 무한 망, 거울, 풍선을 이용하여 환영, 확장, 편집증적 반복이라는 주제를 표현함으로 자신이 앓고 있는 강박증, 환각, 착란증세를 해소해내고 있다. 그녀는 살기 위해 숨 쉬고 살아내기 위해 작업을 한다. 끊임없이 표출해 내어야만 용광로처럼 끓는 피를 뿜어내어야만 숨을 쉴 수 있기에 멈추지 않고 토해낸다. 표현한다는 것. 자신의 내면의 그 무엇을 표출해낸다는 것이 과연 우리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가? 말, 글, 그림, 몸짓, 음악으로 표현해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치유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러하기에 뉴욕이란 거대한 도시에 살고 있는 그토록 많은 이들이 미술관과 공연장을 찾는 것은 아닌지... 자유로이 자신의 무의식을 터트려내는 아티스트들을 동경하고 또 사랑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치유받지 못한 자신의 영혼들을 달래려고...

글 | 장신정
아츠앤컬쳐 뉴욕특파원, 전시 & 프로그램 기획.
NYU 예술경영석사. 전 MoMA P.S.1.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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