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아니, 이게 나라냐? 달동네 같은 부락을 세워놓고 이걸 ‘나라’라고 했으니 말이다. 기원전 753년,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가 팔라티노 언덕 위에 세운 이 ‘나라’를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마’라고 했는데, ‘나라’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초라했고 인구도 너무 적었다.
로물루스는 먼저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단 ‘이민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말이 이민자이지 주로 이들은 다른 부족사회에서 추방된 자들이거나 죄짓고 도망친 범죄자들이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로마의 인구를 늘리려면 자식을 많이 낳아야하는데, 문제는 로마에는 여자라고는 눈을 씻어 봐도 없고 죄다 우락부락한 남자들뿐이었다는 것. 로물루스는 고민 끝에 묘수를 생각해냈다.
그는 축제를 열어 주변에 사는 사비니 부족을 초대하면서 여동생이나 딸들을 꼭 데려오라고 신신당부했다. 어수룩한 사비니 부족의 왕은 자기 백성을 데리고 참석했다. 축제가 절정에 이를 때쯤 사비니 남자들은 공짜술에 완전히 곯아떨어졌던 모양이다. 바로 이때 로물루스가 신호를 보내자 로마 남자들은 사비니 여인들을 모조리 납치해 가파른 캄피돌리오 언덕 위로 달아났다. 나중에 정신이 든 사비니 남자들은 여인들을 모조리 빼앗긴 채 쫓겨났고, 납치된 여인들은 거칠기 짝이 없는 로마 남자들과 강제로 ‘집단결혼’을 당하고 말았다. 얼마 후, 사비니 남자들은 완전무장하고 납치된 여인들을 구하러 로마로 쳐들어왔다.
캄피돌리오 언덕 아래 평지에서 로마군과 사비니군이 일전을 벌이려고 하자, 이미 로마 남자들의 아내가 되어 자식까지 낳은 사비니 여인들은 이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왜냐면 로마군이 지게 되면 과부가 되는 것이고, 사비니군이 지게 되면 고아가 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인들은 로마군과 사비니군 사이에 뛰어들어 태어난 아기들을 보란 듯이 번쩍 들고 싸움을 말렸다. 결국 로마군과 사비니군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손을 잡고 평화적으로 결합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 루브르 박물관에 몇 점 있는데 그 중에서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작품 <사비니 여인들>(Les Sabines)이 특히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은 그가 그린 엄청난 대작 <나폴레옹의 대관식> 바로 오른쪽에 걸려있다. <사비니 여인들>도 가로 약 5.2m, 세로 약 3.8m나 되는 대작이다. 이 그림은 로마군과 사비니군 사이에 사비니 여인들이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는 장면을 묘사하는데 한 여인은 보란 듯이 아기를 번쩍 들고 있다.
자크-루이 다비드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신고전주의 양식을 이끈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로마에 5년 동안 체류하면서 고대의 조각을 연구한 결과에 기초하여 자신만의 양식을 발전시켰다.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혁명의 소용돌이에 연루되어 프랑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로베스피에르를 지지했으나 로베스피에르가 1794년에 처형당하자 곧 투옥되었다. 그후 실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다행히 그를 알아보고 궁정화가로 임명했다.
이 그림은 그가 수감되어있을 때 구상하여 1796년에 본격적으로 착수하여 1799년에 완성했다. 이 그림은 피비린내 나는 혁명기 후 분열된 프랑스 사회를 통합하기 위해 무기를 내려놓고 화합하자는 의미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설 같은 사비니 여인 이야기는 로마 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로마가 애초부터 다민족 국가로 출발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 로마와 사비니 족은 공동의 적에 대치하기 위해 결합했을 수도 있겠는데, 그 적이란 이탈리아 중북부의 선진국 에트루리아(Etruria)로 로마의 초기 발전과정에서 가장 힘든 적수였다. 로마는 에트루리아계 왕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게 되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에트루리아를 제압했다. 그리고는 이탈리아반도 전역을 석권한 다음 서서히 대제국 건설에 발을 내디디게 된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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