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콜롬비아 북쪽 카리브 해안에 위치한 카르타헤나는 콜롬비아에서 제1의 관광도시로 손꼽히며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스페인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기 때문에 이를 구분하기 위해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를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Cartagena de Indias), 즉 ‘인디아들의 카르타헤나’라고도 한다. ‘인디아들’은 서인도 제도, 즉 카리브해 지역을 말한다.
1533년에 스페인의 식민지로 세워진 카르타헤나는 파나마의 푸에르토벨로, 쿠바의 아바나와 함께 카리브해에서 스페인의 해상권을 지키던 주요 항구이자 남아메리카 대륙의 관문이었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금, 은 등귀한 보물은 모두 카르타헤나에 보관되었다가 일 년에 2번씩 선적되어 아바나를 거쳐 스페인 본국으로 보내졌다.
또 카르타헤나는 아프리카 노예교역으로 부유한 항구이기도 했다. 스페인은 해적과 외적의 침략으로부터 카르타헤나를 방어하기 위해 11km의 굳건한 성곽을 시가지 둘레에 세웠고 또 도시 외곽 요충지에는 크고 작은 요새들을 세웠는데 그중에는 카르타헤나 외곽 동쪽 해발 40m의 언덕 위에 세운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 성(Castillo San Felipe de Barajas)은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최대 규모의 요새였다. 거대한 벙커 같은 이 요새 안은 미로 같은 터널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적이 접근하는 소리를 위에서도 파악할 수 있었고 또 만약 적이 터널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감쪽같이 살해할 수도 있었다.
요새 앞에는 카르타헤나 방어 사령관 블라스 데 레소(Blas de Lezo)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반쪽 사나이’다. 왼손으로 칼을 들고 있는데, 오른팔은 없고 왼쪽 다리는 목발이다. 더 자세히 보면 왼쪽 눈도 없다. 그는 10대 초반부터 평생을 전투와 전투 속에서 살아온 군인으로 15세 때 왼쪽 다리를 잃었고 18세 때는 왼쪽 눈을 잃었으며 25세 때는 오른쪽 팔을 잃었던 것이다. 그는 ‘젱킨스의 귀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불리한 전세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영웅이었다.
전쟁의 발단은 173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인도제도로부터 영국으로 돌아가던 영국 상선이 스페인 함선에 나포되어 영국 선장 젱킨스의 귀가 잘리자 영국은 복수를 다짐하고는 제독 에드워드 버논 경을 1739년에 서인도제도로 보냈다. 영국해군은 먼저 파나마의 포르토벨로 항구를 단숨에 점령한 다음 그 여세를 몰아 마지막으로 카르타헤나를 공격하기로 했다. 버논 경은 1740년에 제1차로 소규모 공격 감행했고 이어서 13척의 전함으로 제2차 공격을 시도한 후 1741년 3월 13일에 대규모 함대를 동원하여 대대적인 총공세에 나섰다.
당시 카르타헤나의 전력은 정규군과 원주민 및 아프리카 노예 후예들로 구성된 비정규군을 합친 3,600명과 6척의 전함이 전부였지만 영국의 전력은 전함 및 수송선 186척, 병력 28,000명, 거기에다가 북아메리카의 지원병력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대군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춘 버논 경은 본국에 승전보부터 미리 보냈고 영국의회는 커다란 승전기념메달까지 주조했다.
그런데 영국은 ‘반쪽 사나이’의 능력을 간과했다. 카르타헤나에 상륙한 영국군은 산 펠리페 데 바라하스 요새를 공격하다가 그의 노련한 전술에 휘말려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게다가 황열병까지 번졌다. 영국 측 피해는 사망자 1만 명에 부상자는 7,500명에 다다랐고 파괴된 전함과 수송선 및 대포는 수도 없이 많았다. 반면에 스페인 측 피해는 아주 적었다. 대승을 거둔 블라스 데 레소 장군은 불구의 몸으로 기고만장하던 버논 경에게 엄청난 치욕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 악화되는 바람에 ‘반쪽 사나이’는 몇 달 후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신대륙에서 영국의 세력이 날로 증대해 가는데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이 전투에서 승리하여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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