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1504년에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이 완성되었을 때 보티첼리는 베키오 궁전 앞 로자 데이 란치(Loggia dei Lanzi)에 두고 싶어 했고, 다른 사람들은 두오모가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국베키오궁 앞에 놓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1527년, 피렌체에서 폭동이 일어나 왼쪽 팔이 부러진 사건을 제외하고 거의 400년 동안 다비드조각상은 시뇨리아 광장에서 평화롭게 서 있었다. 1527년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군대가 로마를 공격하는 중에 ‘로마 약탈 sacco di Roma’ 사건이 일어난 해로 당시 교황은 피렌체 메디치 가문 출신의 클레멘스 7세였다.
19세기 중반, 미술가들과 문화재 관리직원들 그리고 정치인들은 다비드에게 새로운 집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1873년 여름에 시뇨리아 광장을 가로질러 아카데미아까지 철도를 놓았고 7일 동안에 걸쳐 이사가 진행되었다. 베키오 궁에서 아카데미아까지는 걸어서 15분 거리다.
다비드 조각상을 옮긴 것에 대해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기자는 “다비드는 이제 미이라가 되었다. 나무와 쇠로 된 새롭고 기묘한 장치에 갇힌 채 ‘아카데미아 디 벨레 아르티’라고 불리는 예술의 공동묘지에 매장되기 위해 끌려가고 있었다.”라고 글을 썼다.
다비드가 떠난 광장의 빈자리에서 느끼는 당혹감과 미련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고, 마침내 1910년 대리석 복제품이 그 자리에 세워지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관광객들은 베키오궁 앞에 세워진 복제품 다비드 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한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음악평론가, 코러스나우 예술감독, ITALIAN FILM & ART FESTIVAL 고문을 맡고 있고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