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아츠앤컬쳐] 영국 출신으로 역사를 전공한 소설가 사라 더넌트(Sarah Dunant)가 쓴 ‘르네상스 창녀(In the company of the courtesan)’는 피암메타 비안키니(Fiammeta Bianchini)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소설 속 주인공 피암메타 비안키니를 연상케 한다. 1527년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몇가지 자료를 찾아 보았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는 베네치아 근교의 시골 피에베 디 카도레(Pieve di Cadore)에서 1490년에 태어났고 조반니(Giovanni Bellini)에게 그림을 배웠다. 같은 제자였던 조르조네(Giorgione, 본명 Giorgio Barbarelii)와도 친하게 지내며 함께 작품 활동을 했는데, 스승 조반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티치아노는 베네치아를 넘어 전 유럽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미켈란젤로는 티치아노가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직접 화폭에 그림을 그린 것을 두고 “매우 훌륭한 화가이긴 하지만 데생이 더 좋았더라면 훨씬 완벽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림의 구입자인 우르비노의 공작 귀도발도(Guidobaldo da Montefeltro)의 어머니 엘레오노라라는 설도 있고, 귀도발도의 정부(情婦)를 그린 그림이라는 얘기도 있다.

16세기의 베네치아는 매춘부가 약 2만 명에 이를 정도로 성산업이 호황을 이루었는데 당시 인구가 15만 명인 걸 감안하면 그 수는 엄청나다. 또한 매춘부들에게서 세금을 걷었는데 그 액수가 십여 척의 군함을 운영할 정도였기에 행정 당국에서도 내놓고 장려했다는 얘기도 있다. 베네치아 매춘부는 도시의 쾌락적 문화 속에서 활발히 활동했고,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관광 코스로 여겨졌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독일이나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의 몇 나라는 항구도시를 중심으로 성산업이 발달되었고 합법이다.

우아하고 세련된 매너와 문학과 음악 등 문화예술에 대한 높은 교양까지 갖춘 이름난 매춘부들이 귀족층, 화가, 건축가, 작가 등과 어울리는 커뮤니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자유분방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같은 작품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음악평론가, 코러스나우 예술감독, ITALIAN FILM & ART FESTIVAL 고문을 맡고 있고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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