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객석의 조명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막이 열리지 않은 무대 안에서 객석으로 빗소리가 흘러나온다. 막이 오르고 호스를 통해 뿜어내는 물줄기를 맞으며 한 남자가 서있다. 그리고 또 다른 남자가 물이 흥건히 고인 바닥 아래에서 나타나 서로를 끌어당기다가 밀어내는 듯한 움직임을 통해 어두운 내면과 사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약간은 공포스럽고 그로테스크한 무대가 펼쳐진다.
지난 5월 14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다는 그리스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가 연출한 <잉크>를 관람했다. 12일과 13일 양일간 무대에 직접 출연했던 디미트리스가 이날은 객석에서 연출자로서 한국 관객을 만났다.
2017년 <위대한 조련사> 이후 6년만에 한국을 다시 찾은 디미트리스는 생명의 원천인 물을 소재로 작품을 구성했고 무대에서 옷을 입은 남자와 완전 전라의 남자가 퍼포먼스를 펼쳤다. 서로가 적대적이었다가 공존하는 둘의 관계는 묘한 동성애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공연 전반에 걸쳐 무대에 설치된 비닐 막을 통해 빛이 들어오고 다양한 물결이 퍼지는 모습은 특별하고 환상적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가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진행을 맡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폐막식 총연출을 맡아 그리스 신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무대를 통해 이름을 알린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는 로버트 윌슨⸱피나 바우쉬를 만나면서 창작 영역을 회화에서 공연으로 옮기게 됐다고 말한다.
작품을 기획하고 구상하는 시간이 대략 1년 정도 걸렸다는 디미트리스는 어려서부터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화가의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연출을 한다면서 공간을 채우는 작업도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일반적인 단순한 소재로 사유와 상징, 은유로 가득한 시적이면서도 그림 같은 무대를 만들어내는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는 연출자로서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면 늘 단점만 보이기 때문에 어려움과 아쉬움이 있다는 말로 관객과의 대화를 마쳤다.
이날 디미트리스는 말을 많이 아끼는 눈치였고 연출가의 생각과 관객의 해석은 다를 수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여줬는데... 그는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섬세하고 절제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 전동수 발행인
음악평론가, 코러스나우 예술감독,
ITALIAN FILM & ART FESTIVAL 고문을
맡고 있고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예술총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