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트라팔가 광장
내셔널 갤러리에서 본 트라팔가 광장

 

[아츠앤컬쳐] 런던의 명소 트라팔가 광장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런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끌어들인다. 그런데 건축적으로 본다면, 이 광장은 전체적으로 어느 정도 좌우 대칭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통일성이 보이지 않는다. 즉 이 광장의 특징은 한마디로 불균형이다. 그것은 이 광장을 처음으로 설계한 존 내쉬(John Nash 1752~1835)가 의도적으로 균형을 피했기 때문이다. 이 광장은 원래 영국 왕실 마구간이 있던 곳인데 1820년대에 존 내쉬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하여 1845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이 광장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는 영국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이 휘날린다. 1837년에 세워진 이 미술관은 돔을 받치는 부분이 좀 촌스럽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곳에 소장된 예술품만 보면,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과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박물관과 함께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13세기 중반부터 1900년대까지 2,300점 이상의 회화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관람자 숫자로 서열을 매겨 본다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영국의 대영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예술 박물관 다음이다.

내셔널 갤러리
내셔널 갤러리

그런데 이 광장의 이름 트라팔가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스페인 지명 트라팔가르(Trafalgar)를 영어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그럼 왜 이런 스페인 지명이 붙어졌을까? 정확히 말하자면, 넬슨 제독(H. Nelson 1758~1805)이 이끄는 영국함대가 스페인 남부의 트라팔가르 곶(Cabo de Trafalgar) 해상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함대를 맞아 압승을 거둔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때문이다. 이 전투는 넬슨 제독에게는 생애 마지막 전투였다.

이 불규칙적인 형태의 광장에서 초점을 이루는 것은 화려한 코린토스 양식의 높은 기둥이다. 높이는 51미터이고,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이 기둥 정상부에는 영국 국민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해군제독 넬슨의 석상이 올려져 있다. 이 기둥 아래 주위에는 네 마리의 사자상이 마치 넬슨을 수호하는 듯하다. 넬슨의 석상 크기는 약 5미터가 되는데, 육안으로는 그의 모습을 자세히 보기 힘들지만,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뭔가 불균형으로 보인다. 왜 그럴까? 늠름한 넬슨 제독이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한쪽 손이 없기 때문이다. 전투와 전투 속에서 살아갔던 그의 참모습이리라. 사실 그는 한쪽 눈까지도 잃었는데 조각가가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는 멀어서 확인하기 힘들다.

넬슨 제독 석상
넬슨 제독 석상

넬슨은 불과 12세에 해군에 입대, 미국독립전쟁 때인 1780년에는 영국 함대에 배치되어 전투경험을 쌓기 시작하여, 1794년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 전투에서는 오른쪽 눈을 잃었고, 1797년 대서양의 카나리아 제도의 테네리페 공격전에서는 오른팔을 잃었다. 불구의 몸이었지만 그는 1798년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 아부키르 만(灣) 전투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 영국의 지중해함대 사령관이 된 그는 1805년 10월 21일 스페인 남서부 연안 트라팔가르(Trafalgar) 곶 해상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맞았다. 이 전투에서 뛰어난 전술로 적의 함대를 궤멸 상태로 몰아가던 중, 적의 저격병이 쏜 총탄이 그의 오른쪽 어깨를 뚫고 척추에 박혔다. 승리를 바로 눈앞에 두고 쓰러진 그는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저는 임무를 다 했습니다라고. 그리고는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는 세상을 떠났으나 트라팔가르 바다에서 쟁취한 승리로 영국은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하여, 향후 100년 동안 해가 지지 않는 무적의 해상제국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다지게 되었던 것이다. 내셔널 갤리리는 대영제국의 영광의 깃발이 휘날릴 때 세워진 것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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