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트르 묘지 안 알퐁신 플레시의 묘소(가운데)
몽마르트르 묘지 안 알퐁신 플레시의 묘소(가운데)

 

[아츠앤컬쳐]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이 오페라는 홀로 사랑을 고이 지키다 사라져간 한 여인의 애절한 삶을 그리고 있는데 배경은 19세기 중엽의 파리이다. 한편 이탈리아어 ‘라 트라비아타’에서 라(La)는 여성형 정관사, 트라비아타(Traviata)는 ‘길을 벗어난 여인’이라 뜻으로 주인공 비올렛타(Violetta)의 직업은 막말로 표현하자면 파리 사교계의 ‘고급 창부’인 것이다.

이야기를 파리의 몽마르트 묘지로 옮겨보자. 이 묘지에는 음악가 베를리오즈, 화가 드가, 과학자 푸코, 작가 스탕달, 독일 시인 하이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 등 유명 인사들의 묘소가 눈에 띈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묘소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의 묘소

그중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Alexandre Dumas fils, 1824~1895)의 묘소는 작은 신전처럼 보인다. 한편 그의 이름에 붙은 피스(fils)는 프랑스어로 ‘아들’이란 뜻이다. 그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1802~1870)인데, 그의 할머니는 아프리카 흑인노예 출신이었다.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딴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사생아였으나 나중에 친자식으로 인정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어머니가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고, 또 비천한 가정 출신에다가 흑인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주위의 냉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탓인지 나중에 그는 불우한 계층의 약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작품들을 주로 썼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소재로 쓴 <동백꽃의 여인(La Dame aux Camélias)>이다. 그럼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여인이었을까?

알퐁신 플레시의 묘소
알퐁신 플레시의 묘소

뒤마 피스의 묘소에서 약 100미터 떨어진 곳에는 바로 그 여인의 묘소가 있다. 그녀의 묘소는 다른 묘소들과 뒤섞여 있어서 눈에 쉽게 띄지 않고 또 그 규모도 작고 단순한 편이다. 이 묘소에 옆면에는 ‘이곳에 알폰신 플레시(Alphonsine Plessis 1824~1847)가 쉬고 있다’는 비문이 있고, 앞면에는 하얀 동백꽃을 가슴에 안고 있는 그녀의 초상화가 놓여 있다. 그녀가 바로 ‘동백꽃의 여인’이다.

알폰신은 노르망디 지방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가난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15세 때 파리로 무작정 상경하여 세탁소, 모자가게 등을 전전하며 일했다. 그러다가 부유한 상인의 눈에 띄어 그의 애첩이 된 다음부터는 화려한 생활에 젖게 되었고, 더 나아가 파리 사교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사교장에 갈 때는 항상 동백꽃을 가슴에 꽂았다.

어느 날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그녀를 알게 되어 사랑에 빠졌으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1844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약 1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후 그녀는 부유하고 권세 있는 귀족과 잠시나마 두 번의 결혼까지도 했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귀족스럽게 보이도록 ‘마리 뒤플레시’(Marie Duplessis)라고 바꾸었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그녀는 불과 23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폐병으로 절명하고 말았으니...

그녀의 사망소식을 나중에 접한 알렉상드르 뒤마 피스는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이리하여 그는 그녀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동백꽃의 여인>을 썼는데 이 자전적 소설에서 그녀는 마르게리트 고티에(Marguerite Gautier), 자신은 아르망 뒤발(Armand Duval)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다름 아닌 이 작품의 내용을 각색하고 주인공의 이름을 이탈리아식으로 비올렛타(Violetta)와 알프레도(Alfredo)로 바꾼 것이다.

 

글·사진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외에도 음악, 미술, 역사, 언어 분야에서 30년 이상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활동했으며 국내에서는 칼럼과 강연을 통해 역사와 문화의 현장에서 축적한 지식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탈리아 도시기행>, <동유럽문화도시 기행>,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외에도 여러 권 있다. culture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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