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들을 위한 진혼곡

Бюст_Р._Гамзатова_в_Ялов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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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앤컬쳐] 지난해 중반 한 뉴스 매체를 통해 러시아의 전승절 기념행사가 대폭 축소되었다는 내용을 접했다. 담당 기자는 그 이유를 ‘불멸의 연대’ 행렬을 꺼리는 러시아 정부 측 입장이라 밝히며, 주요 행사인 연대행렬이 반전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 했다. 사실상 전승절 행사의 꽃인 연대행렬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가담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러시아 정부로서는 시위나 테러보단 우크라이나 전쟁의 실상을 대내외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몹시 불편했을 터였다.

러시아의 전승절은 5월 9일로, 1945년 구소련이 독일 나치 정권의 항복을 받아낸 날이다. 전승절의 주요 행사로는 2차 세계 대전에서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는 ‘불멸의 연대’ 행렬이 있다. 행렬에는 시민 의식을 고취시키는 노래들이 주로 불리는데, 가장 잘 알려진 노래가 바로 ‘백학’이다. 러시아 특유의 비장미와 비극성이 두드러진 ‘백학’은 국내에선 1955년 드라마 <모래시계>의 삽입곡으로 인기를 끌었다. 방영일마다 시민들의 귀가를 앞당겼다는 <모래시계>의 인기는 아마도 드라마의 내용과 분위기에 적중된 삽입곡 ‘백학’의 싱크로율이 아닐까 한다.

Joseph_Kobzon_(2016-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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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의 매력은 무엇보다 이오시프 코브존(Iosif Kobzon)의 깊고 어두운 목소리에 있다. 그러나 서글픈 단조 선율에 감도를 더하는 노랫말 역시 이에 버금가는 심도를 지닌다. 노랫말의 원문은 러시아 서쪽의 공화국인 다게스탄의 민중시인 라술 감자토프(Rasul Gamzatov)의 시인데, 그 출처에 관해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치열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한 감자토프의 경험으로, 그는 후일 전쟁의 참상 속에 죽어간 전우들을 추모하고자 시를 쓴다. 다게스탄의 언어인 아바르(Avar)어로 쓰인 감자토프의 시는 사실상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의 혼을 어루만지기 위한 진혼곡이었다.

rasul-gamzatov-2023-stamp-of-russia-fad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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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생각하지. 피비린내 나던 들판에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을.

그들은 모국 땅에 묻히지도 못한 채 백학이 되었다네.

로부터 그들이 하늘을 날며 노래하는 듯하여

우리는 하늘을 바라본 채 자주 슬픔에 빠지는 게 아닐는지.

날아가네. 날아가네. 지친 백학의 무리가 저무는 하루의 안개 속을.

저 무리의 작은 틈새가 혹여 내 자리가 아닐는지.

그날이 오면 나는 그들과 회청색의 어둠 속을 끝없이 날으리라.

대지에 남겨진 그대들의 이름을 새처럼 목 놓아 부르면서.”

노랫말에 대한 다른 이야기로 어린 소녀 사다코(Sadako Sasaki)의 이야기가 거론되기도 한다. 감자토프는 히로시마 방문 시 사다코의 기념비에서 영감을 얻게 되는데, 이는 소녀가 원자폭탄 투하에 의한 백혈병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로 사다코는 12살에 생을 마감하기 전, 장수와 행복을 기리는 천 개의 종이학 센바즈루(千羽鶴)를 접었고, 이는 사다코의 동상과 함께 평화의 공원에 안치되었다 한다.

Памятник_Р._Гамзатову_в_Махачкале
Памятник_Р._Гамзатову_в_Махачкале

1968년 감자토프의 시는 러시아의 시인 나움 그레브네프(Naum Grebnev)의 번역에 의해 러시아 월간문예지 ‘신세계(Novy Mir)’에 게재되었다. 이에 크게 감명받은 러시아의 배우이자 가수 마크 베르네즈(Mark Bernes)는 우크라이나 작곡가인 얀 프랜켈(Yan Frenkel)에게 ‘백학’의 작곡을 의뢰했다. 1969년 ‘백학’의 녹음 당시 베르네즈는 폐암 투병 중이었는데, 녹음을 마친 5개월 후 사망하여 음반은 그의 유작으로 남았다.

베르네즈의 예기치 않은 죽음만큼이나 당혹스러운 결과는 지난해의 러시아 전승절 행사라 여겨진다. 모스크바 붉은광장에는 과거 독·소 전쟁 때 나치 독일의 수도 베를린을 직격했던 T-34 1대 만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이 평화의 전차는 더 이상 위엄을 풍기지도, 승리의 수호신을 상징하지도 못했다. 과거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그 가치를 되찾기를, 그들의 혼을 달래는 노래가 다시 불리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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