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아츠앤컬쳐] 아랍권은, 유럽인들에게는 Middle east(중동)로 불리며 동양으로 분류된다.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진짜 동양 국가들은 Far east(극동)로 부르며 크게 보면 동쪽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버린다. 그래서 월드컵 축구 경기 예선전을 보면 우리는 중동 국가들과 경쟁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손흥민 이강인 불화 사태로 난리가 난 축구 시합 역시 ‘카타르 아시안 컵’으로 불리면서 이란, 요르단, 카타르와 같이 시합하는 걸 보면 FIFA에서 아시아는 그냥 몽땅 다 같이 묶어버리는데, 아직도 서양 사람들의 눈에는 거기가 거기인가 보다. 우리의 관점에서 아랍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신라시대에 페르시아와 많은 교류가 있었고 그들의 전설 같은 서사시 ‘쿠쉬나메’에도 신라로 망명해 공주와 결혼했다는 페르시아 왕자의 이야기가 있으니 역사적으로 그쪽과 한국이 아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처용이 그쪽 사람이 아닌가 이야기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현재 이슬람교가 정치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배하고 있는 중동 국가들에서 결혼제도를 살펴보면 경제적 능력만 된다면 3번째 부인까지 데리고 살 수 있는 일부다처제 결혼제도에 약간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공식적으로 3명의 아내라서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왕 살만 빈 압둘아지즈 역시 공식적으로 3명의 아내를 두고 있는데 3번째 아내의 장남이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다.

그 유명한 돈 많기로 유명한 아랍에미리트 부총리며 영국 맨체스터 시티 축구단의 구단주인 만수르도 우습게 본다는 무하마드 빈 살만이 한국에 와서 대한민국의 글로벌 기업의 총수들을 일렬로 주르르 앉혀놓고 한꺼번에 만나는 사진이 언론을 통해 뿌려지며 그의 영향력을 만방에 떨쳤다. 가진 돈이 얼마인지 본인도 모를 인생을 보며 한껏 부러워하지만, 그 역시 복잡한 속내가 있을 것이다. 그 많은 왕자 사이에서 권력 암투를 하며 북한에서의 권력 싸움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잔인한 숙청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픈 일이다. 이런 복잡한 일들을 만들어내는 결혼제도를 보면서 서양 사람들은 여성의 인권 문제에 있어서 비판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필자의 지인에게서 직접 전해 들은 이야기가 있다. 영국 유학 시절 알고 지낸 현지 외국인 커플이 아랍국가에 다녀온 에피소드를 이야기해 주었는데 원래 그런 줄 알고 있었지만, 경험담을 직접 접하니 신기했다. 지나가던 아랍 사람이 여성에게 너무 아름답다며 자신의 3번째 부인이 되어 달라고 해서 그녀는 결혼했다고 하며 반지까지 보여주니 아랍 사람이 한다는 말이 집에 낙타가 많으니 남편에게 몇 마리 주면 되겠냐고까지 물어보았다는 이야기였다.

아랍 남자들의 눈에 비친 유럽 사람들의 모습은 신비하고 매우 매력적으로 보였나 보다. 타국 여성들에게 거침없이 제안하는 아랍 사람들의 대담함 그리고 낙타만 잔뜩 가지고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넘어 신선하기까지 했다. 우리에겐 그런 생각을 하는 그것만으로도 기도원에 들어가 3박 4일 정도 회개 기도의 사례 정도로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이슬람 문화와 대충돌의 긴 역사를 가진 유럽인들에는 이런 모습들이 매우 부도덕하게 그려지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그려지는데 오페라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모차르트의 ‘후궁으로의 도주’, ‘여자는 다 그래’,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과 ‘이탈리아의 터키인’ 등의 희가극에서 여색을 밝히고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여인들이 그들의 얼굴이나 생김새를 보면서 킥킥대며 웃는 장면들이 있는데 보통은 매부리코에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들로 그리곤 한다. 물론 연출자들의 상상력을 통해 매력적이고 이국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경우도 많지만, 작곡 당시에는 그들이 갖고 있던 편견 그대로 무대에 올라갔었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에서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을 무대에 올렸다. 현재 로시니의 오페라 중 ‘세비야의 이발사’ 다음으로 많이 공연되는 레퍼토리로 인기가 있지만 한국에서의 전막 작품으로는 초연이었다.

그만큼 한국 오페라 공연 무대에서 올라가는 공연 레퍼토리의 다양성이 그동안 매우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 ‘알제리’는 세계최강 대한민국 여권으로도 그냥 들어갈 수 없는 무비자 비협정국이다. 한국에서 까다로운 비자 심사를 통과해야만 다녀올 수 있어서 그런지 국가의 정보를 도통 찾아보기 쉽지 않은 국가다.

독립 당시 소련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국가들과 적대적이었고 세속주의 이슬람주의지만 프랑스의 지배를 오래 받았던 터라 기독교 핍박 세계 1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기독교 선교사 사제, 수녀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범죄가 국가의 묵인 아래 자행되었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로 매우 폐쇄적인 국가의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미운 유럽인들이 들고 온 축구에는 광적으로 집착하며 영국의 훌리건과 같이 경기 후 난장판을 만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아프리카와 아랍권에서 가장 큰 면적의 국가이고 어마어마한 자원 부국이지만 다른 아프리카 자원국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발전에 실패한 국가다. 한때 오스만튀르크의 지배 아래 있었던 알제리는 서양의 문화 콘텐츠에 터키와 같은 선상에서 그려지고 있다.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로시니의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에서 여주인공 이사벨라가 부르는 곡 중 가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역시 무스타파라는 알제리의 고위 관리 역할은 매우 호색한이면서 뚱뚱하고 못생긴 캐릭터다. 부인 엘비라에게 흥미를 잃자 해적들이 이탈리아에서 잡아온 린도르라는 하인과 결혼시켜 이탈리아로 보내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때 마침 실종된 린도르를 찾아다니던 연인 이사벨라가 지중해를 헤매다 배가 난파당해 알제리로 떠밀려왔는데 그녀를 본 무스타파는 당장 결혼하고 싶어 한다. 말도 안 되는 우연으로 서로 만나게 된 이사벨라와 린도르는 그동안의 결혼 직전의 린도르의 상황에 대한 오해를 풀고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는 재치를 발휘해 탈출에 성공하면서 무스타파와 그의 아내 엘비라 역시 화해한다는 해피엔딩 스토리다.

이 작품이 초연되고 이듬해인 1814년 로시니가 작곡한 ‘이탈리아의 터키인’은 반대로 터키에서 나폴리로 여행하러 온 왕자 셀림이 터키에서 헤어진 옛 애인 자이다와 이탈리아 유부녀 피오리나 사이에서 어느 쪽도 포기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모든 참가자가 터키 사람으로 변장하는 무도회에서 파트너를 바꿔 춤을 추다 결국 원래의 사랑을 찾아간다는 해피엔딩 오페라다.

로시니가 전작과 달리 터키 사람을 외모적으로는 좀 멋지게 그렸지만 아직 바람기 많은 점은 버리지 않았다. 관객을 끌어들인다는 당연히 과장된 극적 요소가 필요했고 작곡 당시 유럽에 들어오기 시작한 동양 문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오페라의 소재로 삼기에 좋은 시기였다. 유럽의 패션이나 회화 가구 제작 건축에까지 아랍, 중국, 일본풍이 주류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십자군 전쟁을 통한 유럽인들의 아랍문화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은 싫든 좋든 그들의 DNA에 남아있는 듯 지금도 문화예술 작품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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