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ar Degas: The Ballet from "Robert le Diable"_1876_Oil_on_canvas
Edgar Degas: The Ballet from "Robert le Diable"_1876_Oil_on_canvas

[아츠앤컬쳐] 독일(당시 프로이센) 출신으로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작곡가 마이어베어는 ‘악마 로버트’라는 작품으로 성공을 거두며 프랑스 파리에서 인생 커리어의 정점을 찍기 시작한다. 이 오페라의 주인공은 노르망디 백작 로버트인데 우리에겐 노르망디 하면 세계 역사의 운명을 바꿨던 작전이며 D-day의 유래가 되었던 1944년 6월 6일 세계 2차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맨 먼저 떠오른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태극기 휘날리며’ 외에도 여러 영화와 전쟁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었는데, 상륙하기도 전에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젊은 군인들의 모습에서 전쟁의 참혹함에 충격을 받았었다.

라이언 일병구하기
라이언 일병구하기

프랑스 북서부 해안가에 있는 노르망디 지역은 바다 갯벌에 홀로 솟아있는 몽생미셸섬이 유명한데, 이곳에 정착한 용맹한 바이킹족의 롤롱이라는 이름의 왕이 이끄는 병사들은 무려 파리까지 침공했던 용맹한 민족이었고 오랜 기간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파리 침공을 이끈 롤롱의 후손이었던 로버트 공작에 관해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사탄의 아들‘이라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다. 어린 시절 ‘리처드 도너’감독의 ‘오멘(1976)’이라는 영화를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성경에 등장하는 666의 표식을 갖고 태어난 사탄의 아들인 적 그리스도가 등장하는 공포영화였다. 특별한 특수효과 없이도 사람들에게 소름 돋는 경험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666으로 표현되는 적그리스도는 성경의 긴 역사와 비례해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캐릭터로 각인되었고 이런 인물을 모티브로 한 상상력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곤 했다.

이런 전형적인 공포물 외, 중세 기사도 오페라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는데 프랑스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로버트 악마(Robert the devil(1831.11.21., 파리오페라 초연)’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프랑스 그랑 오페라(대규모 오케스트라, 발레가 필수)의 시초라 불리면서 1893년까지 791회 공연을 했고, 엄청난 공연 횟수가 말해주듯 흥행에 성공했다.

전설의 시작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노르망디의 베르타 공주가 하나님께 기도를 아무리해도 소식이 없자 악마와 거래해 바로 아이를 얻게 된다. 마치 괴테가 쓴 파우스트가 하나님께 기도하다 포기하고 젊음을 달라며 악마와 거래하는 모습과 비슷한데 로버트라는 인물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폭력성이 강해 주변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기까지 했다.

로버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던 포악함에 급기야 어머니에게 칼을 들이대며 위협해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태어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충격을 받아 로마의 성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그는 침묵의 서약과 개들의 음식을 먹는 굴욕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운명을 바꾸려 했다. 그런 어느 날 이슬람 세력인 사라센족이 로마를 침공하는데 그때 흰옷을 입은 로버트가 나타나 로마를 구한다. 마치 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 간달프가 흰옷을 입고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는 로버트에게 왕국을 물려주려 했으나 로버트는 거부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이후로 그의 행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전설의 내용이다.

이 전설을 바탕으로 외진 스크리브의 대본에 마이어베어가 작곡한 5막짜리 오페라의 배경은 시칠리섬의 팔레르모에서 이사벨 공주와의 결혼을 조건으로 기사들끼리 대결하는 경기로 시작한다. 그의 곁에는 베르트람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경기 직전 로버트를 도박판에 뛰어들게 해 돈과 갑옷을 잃게 만들어 버린다. 그런 로버트에게 경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갑옷을 선물하는 이사벨 공주,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해 거짓으로 로버트를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유인해 결국 공주는 그라나다의 왕자와 결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 베르트람은 사실 로버트의 아버지며 악마였다. 아버지라는 혈연의 정을 강요하며 로버트에게 악마를 영원히 섬기는 계약을 강요하는데, 인생을 망쳐버린 아버지에 대한 경고로 가득한 어머니의 유언이 로버트에게 전달되면서 로버트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다행히 계약 시한인 자정이 지나버리면서 악마 베르트람은 지옥으로 소환되어 버리고 로버트와 이사벨 공주는 재회하고 기뻐하며 오페라가 끝난다.

좀 허탈한 줄거리이지만 공연 중 강력한 힘을 지닌 나뭇가지를 획득한 로버트가 죽은 수녀들의 영혼을 무덤에서 나오게 만드는데, 영혼들이 술, 도박, 정욕을 찬양하는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지금 우리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해리포터의 마법 장면들에 환호하듯 당시의 관객들도 감탄했을 것이다.

Louis_Guéymard_as_Robert_le_Diable_by_Gustave_Courbet_-_The_Metropolitan_Museum
Louis_Guéymard_as_Robert_le_Diable_by_Gustave_Courbet_-_The_Metropolitan_Museum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이 발레 장면을 화가 에드가르 드가는 2개나 그렸는데 현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런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첫 장면인 경매 장면에서 물품 664번: 마이어베어의 오페라 로버트 악마에서 사용한 나무 권총과 두개골 3개 소품이 언급될 정도로 프랑스의 대표적 공연이었다.

공연을 본 쇼팽이 감동의 공연 리뷰를 남겼고 작곡가의 고향 프로이센의 국왕 빌헬름 3세가 초청해 베를린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당대 유명했던 알렉산더 뒤마, 빅토르 위고도 이 오페라를 감상했다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파리에 바그너가 나타나 오페라계의 대세가 되면서 조지 버나드 쇼 같은 바그너의 추종자들은 마이어베어의 오페라를 저평가하기 시작했고 점차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20세기 말에 들어서 다시 공연되기 시작했다.

요즘 오래된 동네 치킨집에 길게 줄 서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트랜디한 프랜차이즈 치킨집들 놔두고 왜 여기에 줄 서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요즘 역주행이라고도 하는데 복고라는 이름을 달고 계속 좀비처럼 살아나는 특성을 가진 콘텐츠를 일컫는다. ‘악마 로버트’는 마치 전설의 고향처럼 느껴지는 왠지 진부한 이야기 같지만, 다음 세대들에게는 참신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바지로 갈아입은 오페라’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오페라의 현대적 재해석으로 관객에게 다가가는 시도가 유행했는데 다양한 취향을 갖고 있는 대중들에게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글 |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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