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의 볼레로
[아츠앤컬쳐] 멕시코의 수많은 마리아치(Mariachi) 사이에서 유난히 많이 불리는 노래가 있다. 바로 스페인어로 ‘이스또리아 데 운 아모르’라 읽히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볼레로(Bolero) 형식의 이 노래는 마리아치뿐 아니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리를 누비는 남미 버스커(busker)들의 유명 레퍼토리이기도 하다. 4/4박의 유연한 반복구와 낭만적 선율, 연주자의 즉흥적 꾸밈음들은 생동감을 자아내며 잠시 노래에 얽힌 슬픈 진실을 잊게 한다.
‘사랑의 이야기’는 1955년 파나마의 작곡가인 카를로스 엘레타 알마란(Carlos Eleta Almarán)이 썼다. 알마란은 상처(喪妻)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자신의 친형제를 위로하고자 노래를 지었는데, 가사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나이의 아픔과 고통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운율은 당시 음유시인들이 즐겨 부르던 볼레로 형식으로, ‘날다’라는 어원을 지닌 볼레로의 느린 율동감은 듣는 이를 고통의 심연보다는 위로의 호의에 빠지게 한다.
“이건 어느 사랑의 이야기예요. 무엇과도 닮지 않은. 당신은 나에게 모든 선과 악을 알게 했고, 내 삶에 빛을 비춘 후 꺼져갔죠. 오! 너무나 어두운 삶이여! 당신의 사랑이 없이는 난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신은 왜 당신을 사랑하게 한 건가요? 나에게 더없는 고통을 주고자.”
‘사랑의 이야기’는 이듬해인 1956년, 동명 영화의 사운드트랙으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영화에는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여배우 리베르타드 라마르케(Libertad Lamarque)와 멕시코 영화의 황금기를 이끈 배우 겸 가수 에밀리오 투에로(Emilio Tuero)가 출연했다. 감독인 로베르토 가발돈(Roberto Gavaldón) 역시 유명 감독으로, 그가 촬영한 8편의 영화는 멕시코의 오스카로 불리는 ‘아리엘 상(Premio Ariel)’을 수상한 바 있다.
영화에서 ‘사랑의 이야기’는 라마르케의 목소리로 아름답고 우아하게 불렸는데, 그 인기로 노래는 아르헨티나의 대가 헥토르 바렐라(Hector Varela)에 의해 탱고 스타일로도 편곡되었다. 사실상 ‘사랑의 이야기’는 알마란의 고향인 파나마의 한 노래로만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 노래가 남미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각국의 내로라하는 가수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커버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멕시코를 대표하는 가수인 과달루페 피네다(Guadalupe Pineda)나 마르코 안토니오 솔리스 소사(Marco Antonio Solís Sosa), 로스 판초스(Los Panchos)에 의해 볼레로로 불리던 노래는 이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칠레, 브라질 등 남미 전역에서 인기를 끌다 급기야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 달리다(Dalida), 이바 자네끼(Iva Zanicchi)와 같은 동시대 유럽 가수들에 의해 세계로 뻗어 나갔다.
‘사랑의 이야기’의 인기는 현재에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청취자의 입장으로 매우 반가운 일이다. 프랑스 그룹인 프렌치 라티노(French Latino)를 비롯하여, 일 디보(Il Divo), 엘렌 세가라(Hélène Ségara), 칼로에(Caloé), 스테판 하우저(Stjepan Hauser), 리샤르 갈리아노(Richard Galliano), 자즈(Zaz) 등 장르를 불문한 여러 아티스트들의 연주로 우리의 귀가 호사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잊지 못할 사랑의 순간들이 존재하는 한 세상에는 수많은 ‘사랑의 이야기’가 넘쳐날 것이다. 그리고 1955년, 슬픈 사랑을 위로하고 싶었던 알마란의 ‘사랑의 이야기’는 절대 끝나지 않을, 시리도록 아름다운 사랑의 순간을 오래도록 우리에게 들려줄 것이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