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필요한 즈음에
[아츠앤컬쳐] 전통음악의 울림은 현대인의 일상을 옹달샘과 같이 적셔준다. 정신없이 무언가에 몰두해 마음이 분주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통음악 한 가락은 우리의 생각을 씻어내고 평온에 이르게 한다. 가끔 이름도 알 수 없는 전통악기의 소리는 우리를 먼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는데 그곳이 어디든 현재보다는 편안하고, 자유로우며, 자연적이다. 어쩌면 고대로부터, 중세로부터, 혹은 문명이 태동된 지점으로부터 찾아온 그 소리에서 우리는 환상을 발견하기도 한다. 스웨덴의 전통악기인 니켈아르파(Nyckelharpa)의 경우처럼 말이다.
니켈아르파는 찰현악기이다. 건반이란 뜻의 니켈과 발현악기인 하프가 합성된 이 악기는 활로 현을 그으며 키(key)로 고저를 조절하기에 ‘건반 바이올린’이나 ‘키 하프’로도 불린다. 건반은 14~50개 정도, 주 현 4개와 드론(drone)현 12개로 이루어진 니켈아르파는 폭 넓은 독특한 소리로 민속음악에서부터 아방가르드 락(rock), 게임 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쓰인다.
현대의 니켈아르파 연주가로는 스웨덴 우플란드 출신 음악가인 에리크 살스트룀(Eric Sahlström)이 유명한데, 스페인의 여가수 아나 알카이데(Ana Alcaide) 역시 잘 알려진 니켈아르파 주자이다. 월드뮤직의 정상에 우뚝 선 그녀의 인기곡 ‘An Mah’은 그녀가 왜 현대인의 감성을 두드리는 가수인지를 알게 한다. ‘An Mah’가 실린 2022년 앨범 <의식(Ritual)>의 노래와 연주는 한결같이 신비롭고 고풍스러우며 자연친화적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신음하던 유대인들의 세파르디(Sefardi) 음악의 색채와 스웨덴의 전통악기 니켈아르파의 융합은 성스럽고도 인간적인 슬픔의 승화를 고스란히 간직한다.
아나 알카이데는 가수이자 작곡가, 프로듀서로 고대 전통 및 문화 연구가로도 활동한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그녀는 스웨덴 여행 중 니켈아르파의 소리에 매료되어 음악활동을 재개했다. 강한 영감과 열정으로 전통음악에 현대적 기법을 결합한 그녀의 작품들은 빠르게 월드뮤직 시장을 공략했는데 2006년 발표된 <키 비올라(Viola de teclas)>가 바로 그러하다. 니켈아르파로 스페인 전통음악들을 연주한 이 데뷔앨범은 그녀의 존재감을 강하게 어필했다. 이후 <달과 해처럼(Como la luna y el sol, 2007)>, <불의 노래(La cantiga del fuego, 2012)>, <판게아 이야기(Tales of Pangea, 2015)>, <전설(Leyenda, 2016)>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매료된 악기 니켈아르파의 매력을 톡톡히 알려주었다.
전통음악들을 대중화하는데 선구적 역할을 한 그녀는 각국의 다양한 음악가와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대표곡 ‘An Mah’ 역시 이란의 가수인 레자 샤예스테흐(Reza Shayesteh)의 피쳐링으로 더욱 환상적인 느낌이다. 샤예스테흐는 월드뮤직 씬의 또 다른 인물로 페르시아 전통 음악의 연주가이자 교육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An Mah’는 알카이데의 오피셜 비디오를 통해 접할 수 있는데 인트로와 인터루드를 장식하는 니켈아르파의 독특한 소리와 두 가수의 이국적인 듀엣이 이름 모를 숲의 돌 언덕배기를 신비로 적신다. 그녀는 이 곡의 설명으로 “지구상의 모든 존재와 순환의 진리를 비추는 ‘달의 의식’을 표현하고 싶었다” 했는데 그녀의 시도는 과연 성공적이라 생각된다. 그녀는 아마도 비지속적인 우리의 현재와 비논리적인 인생의 다반사를 ‘달의 의식’ 가운데 비추고 싶었는지 모른다.
“저 달, 황혼 속의 달, 사랑의 치료제여 신성한 밤의 백합이여... 내 집에서 피어난 포도주와 엄숙한 마음의 빛이여... 고요한 아침 공기 속에 잊혀 진 웃음의 물결이 돌아오리... 저 달, 저 달, 저 달도 당신의 아름다운 형상과 비교할 수 없다네.”
글 | 길한나
보컬리스트
브릿찌미디어 음악감독
백석예술대학교 음악학부 교수
stradakk@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