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스타벅스 커피숍이 입점하면 빌딩의 가치가 상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현재 한국에서 커피 브랜드의 위상은 매우 높다. 나만 해도 간단히 열 개 이상의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고 또 만남의 장소로 애용하다 보니 나만의 커피 취향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스타벅스 커피 맛에 대해 시니컬하게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하곤 하지만 가끔 휴대폰으로 커피 쿠폰을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이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부정해도 가성비가 높은 브랜드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여!

스타벅스의 로고 속 캐릭터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사이렌이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뱃사람들을 홀려 바다로 뛰어들게 하거나 배를 좌초시키는 요망한 존재로 유명한 사이렌. 소비자를 커피의 바다에 빠지게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만들었을까? 사이렌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로 한 번 변주됐다가 이젠 디즈니의 친근한 만화 캐릭터로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사이렌의 오랜 전설은 율리시스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그리스 이타카의 왕자 율리시스(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 아이디어를 내서 용장 헥토르와 파리스가 지키던 트로이를 함락시킨 인물이다. 10년간의 전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여러 가지 유혹과 모험을 겪으며 또 다시 10년의 세월을 보내고 20년 만에 집에 돌아온다는 율리시스의 이야기가 바로 호메로스가 기원전 13세기 이야기를 쓴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전쟁 이야기이다.

전쟁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스의 절세 미인 헬레네를 얻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뚫은 스파르타의 메넬라오스. 어렵게 얻은 아름다운 아내 헬레네가 트로이의 파리스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납치인지 헬레네와 파리스가 눈이 맞은 건지 아직도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아무튼 이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고, 싸움에 참여하고 싶지 않아 미친 척 연기를 하던 율리시스와 여장을 하고 숨어있던 아킬레스는 억지로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워낙 능력 있던 그들이라 헬레네의 남편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을 도와 전쟁에서 공을 많이 세우는데 그중 최고의 전사(?)는 바로 아킬레스였다. 어느 날 아가멤논이 전쟁에서 포로로 잡은 아폴론 신관의 딸 크리세이스 때문에 그리스 진영에 전염병이 돌자 아킬레스는 이를 멈추려면 여자를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트로이로 돌려보내는 대가로 역시 포로였으나 아킬레스가 아끼던 여인 브리세이스를 갖겠다고 우겼고 이에 아킬레스는 화가 나 전쟁에서 손을 뗀다.

그러자 그리스의 상황은 급격히 악화한다. 이런 갈등에서 시작된 상황으로 아킬레스는 전투에서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친구의 복수를 위해 전쟁에 다시 참여해 트로이의 최고 장수 헥토르를 죽이게 되지만,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던 파리스가 쏜 독화살에 유일한 약점이었던 발목 힘줄을 맞고 죽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율리시스가 생각해낸 ‘트로이의 목마’ 매복 작전으로 결국 방심한 트로이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전쟁이 끝나고 율리시스는 돌아오는 길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딴 살림을 차린 적이 있다. 마녀 키르케와 1년, 티탄족 여인 칼립소와 7년을 살았다. 이들 사이에 자식도 낳았다는 소문까지 무성하다.

하지만 살다 보니 고향에 두고 온 조강지처와 아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무려 7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말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모습을 보던 제우스가 전령 에르메스를 보내 칼립소를 설득하고 나서야 율리시스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그의 귀향 여정이 10년이나 걸린 원천적 이유는 매번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었기 때문인데, 엉뚱한 곳에 떨어져 그때마다 사건 사고가 발생했고 여인들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율리시스에게 닥친 풍랑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한 번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중 하나인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무스에 의해 동료 선원들이 잡아먹힌 사건이 있었다. 율리시스는 선물 받은 와인을 폴리페무스가 마시도록 유도한 후 그가 잠든 사이 눈을 찌르고 도망쳤다. 폴리페무스는 이 억울한 상황을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전하며 대신 복수를 부탁했기에 율리시스가 바다에서 엄청난 고생을 한 것이다.

이렇게 엄청난 스케일의 신화를 오페라 무대로 옮기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많던 시절 작곡가들의 선택은 이야기 중 무대에서 구현 가능한 현실적 부분만을 골라내는 것이었다. 오페라 역사의 초창기 천재 작곡가로 평가받는 몬테베르디는 피렌체 메디치 가문의 피티 궁전에서 열린 결혼식 피로연에서 ‘야코포 페리’의 오페라 <유리디체(1600)>를 보았다. 페리의 <유리디체>에 자극을 받아 열정적으로 만든 몬테베르디의 첫 오페라가 페리의 오페라와 같은 주제로 남자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만든 <오르페오(1607)>이다.

본격적인 몬테베르디의 상업 오페라가 바로 트로이 전쟁의 영웅 율리시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아내, 가족, 왕권을 되찾는 과정을 담은 <율리시스의 귀환(1640)>이다. 율리시스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와 100여 명의 남자들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청혼을 한답시고 율리시스의 궁전에 아예 자리를 잡고 이타카의 자산까지 축내가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아름다운 페넬로페를 아내로 맞으면 더불어 이타카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율리시스와 먼저 재회한 아들 텔레마코의 계획에 따라 페넬로페는 청혼자들에게 율리시스의 활을 꺼내와 일곱 개의 도끼 구멍을 한 번에 꿰뚫어버리는 사람과 결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청혼자들이 모두 실패하자 마지막으로 거지의 모습을 한 율리시스가 나타나 보란 듯이 성공하고 그의 아들 텔레마코와 측근들이 문을 모두걸어 잠그자 혼비백산하던 청혼자들은 모두 처형당한다. 이후 복수를 위한 적들의 공격을 아테나의 도움으로 모두 무찌르고 율리시스는 가족 상봉과 왕권회복의 행복한 결말을 이룬다.

이 오래된 그리스의 이야기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산업,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현대의 우리는 스타벅스에서 사이렌을 만나고 백화점에서 제우스의 전령 에르메스를 만나며 길에서는 포세이돈의 창을 달고 질주하는 수퍼카를 만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라지는 것은 예술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지고 있지만 전설은 예술의 경지로 모습을 바꿔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끈질기게 남아있다.

신금호
'오페라로 사치하라' 저자
성악가, 오페라 연출가, M cultures 대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졸업
영국 왕립음악원(RSAMD) 오페라 석사
영국 왕립음악대학(RNCM) 성악 석사
www.mcul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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