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최근 많은 전시가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결합하며 전시의 영역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뉴미디어와 결합한 새로운 전시 양상은 22세기 미래 시대의 전시형태를 미리 알려주고 있는 듯하다. 이런 새로운 최첨단 전시를 남프랑스 지역의 알피유 산맥 중심부에 위치한 레보드프로방스라는 마을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 기괴한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작은 마을에서 멀티미디어 전시라니, 재밌으면서도 신기하다. 바로 <빛의 채석장>이다.
레보드프로방스는 과거 험준한 산맥에 위치한 덕에 석회암을 채굴하느라 형성된 채석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발전을 거듭하며 더 이상 경제적 가치가 없어지고 결국 채석은 중단되고 만다. 빛의 채석장은 그 버려진 채석장을 활용해 매년 새로운 예술가들을 테마로 환상적인 멀티미디어영상전시를 펼치며 전 세계 사람들을 이 기괴한 암석지대에 불러들이고 있다. 사실 이 채석장은 바위산의 독특한 풍광과 함께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었다.
이미 1977년 지역 발전 도모를 위해 채석장의 거대한 암벽을 배경 삼아 영상과 소리를 이용한 쇼의 장소로 활용했고 무대디자이너 조세프 스보바다(Joseph Svobada)의 디렉팅으로 30년간이나 이어져 왔다. 아마도 관객들은 새로운 영상쇼에 완전히 몰입했었을 것이다. 이후, 2011년 레보드프로방스로부터 채석장 쇼의 관리를 맡은 퀼튀르에스파스(Cultures Space, 박물관과 유적지 홍보 관리하는 파리 소재의 문화재단)는 이 공간을 새롭게 해석하게 되면서 행사 기획을 지안프랑코에게 맡기고 획기적인 전시를 시도한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시도의 첫 번째 타이틀은 <고갱과 반 고흐, 색채의 화가들>이었다. 채석장은 고갱과 고흐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가 된다.
기괴하고 광대한 동굴 가득히 울려 퍼지는 음악과 함께 최고 높이 14m에 이르는 벽면을 가득 채우고 바닥까지 연결되어 이어지는 영상은 고갱과 고흐의 작품과 삶을 보여주며 관람객을 압도했다. 새로운 형태의 전시는 흥행에 성공하면서 안착하게 되고 2013년에는 <모네, 르누아르, 샤갈 지중해로의 여행>을, 2014년에는 <클림트와 비엔나, 황금과 색채의 세기>, 2015년에는 <르네상스의 거장들>, 2016년에는 <샤갈, 한여름밤의 꿈>, 2017년에는 <아르침볼도, 브뤼헐, 보쉬>를 기획하며 버려진 채석장에 전 세계 관람객들을 불러들였다.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서양미술의 거장들의 작품들은 원작을 마주할 때나 원작이 탄생한 마을을 방문했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공간의 광대함과 분절된 그림들의 이어붙이기의 반복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관람객들을 고흐나 미켈란젤로가 그린 작품 속 일부가 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명작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감동적인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디지털테크놀로지에 있다. 100대의 영사기가 수많은 그래픽 서버에 의해 작동되면서 14㎡에 이르는 채석장 벽을 가득 채운다. 바닥까지 완전히 투사되어 마치 거대한 이미지 카펫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3D 오디오는 채석장 내부라는 공간적 특성을 더해 더욱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광섬유 케이블을 설치하여 보다 부드러운 이미지 전송이 가능하며, 각각의 영상 신호는 광섬유 기술을 사용한 빛으로 전환되며 거대한 공간에 초고화질 멀티미디어 영상들을 구현해낸다.
총 7,000㎡에 이르는 채석장에서 3,000여 개의 거대한 이미지를 멀티스크린으로 즐기고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사운드까지 터져 나와 관람객에게 신선한 체험을 제공한다. 어쩌면 실제 명화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강렬한 몰입을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2018 현재는 피카소를 주제로 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빛의 채석장은 역사, 지리, 생태적 환경을 잘 연구했고 이에 따른 문화적 해석과 도시정책 그리고 예술이 매우 잘 어우러진 성공적인 문화기반사업 사례이다. 인구 감소를 겪으며 축소돼가고 있는 우리나라의 많은 중소도시의 현실을 생각할 때 레보드프로방스의 성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