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츠앤컬쳐] 파리는 오늘날에도 빈센트의 시절에도 예술의 중심지이다. 당시 프랑스 출신이든 아니든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로 몰렸었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예술가들은 몽마르트르에 모여 살았고 반 고흐의 동생 테오 역시도 파리 몽마르트르에 거주하고 있었다. 지금도 테오와 빈센트가 살았던 54번지의 아파트가 파리에 남아 있다.
반 고흐는 32세 때 안트베르펜(벨기에)을 떠나 파리에서 여러 화가, 화상들과 교류하면서 그림을 배우고자 했다. 늘 돈이 모자랐고 가난했던 고흐가 생활비가 가장 비쌌던 파리로의 이사를 고집했다는 것은 당시 그가 얼마나 그림에 대한 열정이 깊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예술로 대도시에서 인정을 받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튼 반고흐에게 파리에서의 생활은 예상대로 엄청난 도전이었고 시련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늘 돈이 모자라 끼니를 거르고 허기를 잊기 위해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셔댔다. 그래도 그는 처음 파리의 생활을 그럭저럭 만족스러워했던 것 같다. 치과 치료도 받으며 나름 외모에 신경도 썼다는 것을 그의 파리 시절 자화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창문 너머로 펼쳐지는 대도시 파리와 몽마르트르는 아마도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영감을 끊임없이 제공해주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파리의 모습은 그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존경했던 밀레나 들라크루아 그리고 도미에가 그렸던 파리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을 테니 말이다.
더군다나 동생이 보내주던 편지의 내용과는 다르게 인상파 화가들은 서로 헐뜯고 싸우기에 분주하고 허세 가득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세잔은 반고흐가 스스로 최고의 작품이라 자부했던 '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덜떨어진 작품이라고 비난했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파리는 반고흐에게 로트레크나 베르나르 등 그가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원했던 그림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화가 친구도 만나게 해주기도 했고 시각과 색채의 중요성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가 그린 '나무와 덤불'을 보면 다양한 색조의 초록색 붓 터치 위로 빛나는 하얀색과 노란색 점에 있어서 쇠라에게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난다.
반 고흐는 이미 그림에 있어서 대단한 스타일리스트였고 상당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파리는 반고흐를 변하게 했고 그의 그림은 자유로운 색채와 밝은 느낌을 주는 그림으로 순식간에 바뀌게 된다.고흐는 파리에서 체류하던 2년간 피사로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받고 빛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관점을 체득한다.
파리의 시기는 고흐의 예술이 완숙기로 접어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의 누에넨이나 안트베르펜에 머무르던 시절의 어두운 색채를 계속 고집하는 한 자신의 회화 세계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는 햇살과 그 아래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캔버스에 담아내기 위해 연구하고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러나 반고흐는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을 그저 모방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가 의식했는지 그저 손과 눈이 저절로 움직였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림에는 ‘화가의 단순한 개인적 감각’이 아닌 마음속 깊이를 파고든 ‘화가 개인의 정념’까지 담으려 했다. 이점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반고흐의 결정적인 차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애초부터 그는 화가 개인의 감각까지 배우려는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반고흐는 처음부터 인상파와는 서로 융화될 수 없는 고유의 예술 세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점이 서양미술사에서 반고흐의 회화관이 후기 인상파를 탄생시켰다고 보는 이유다. 사실 좀 더 극단적으로 논하면 '탈 인상파'라 말할 수 있다. 반고흐를 로트레크와 같은 후기 인상파 화가와 함께 묶어 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고흐는 파리 생활 시기 인상파적인 풍경화를 많이 그렸다. 모두 훌륭한 그림이었고 동생 테오는 어머니에게 형에 대해 아마도 크게 성공할 수 있는 화가가 될 것이라며 매우 희망적인 내용의 편지를 담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그린 작품들 중 가장 그다운 작품은 정물과 인물이었다. 해바라기와 같은 인상파적 정물도 그렸지만 과거의 화풍을 잇는 '구두' 연작은 정말 반고흐다운 그림이다. 낡은 구두란 소재는 반고흐만의 것이다. 구두는 보리나주 탄광촌 때를 기억하며 그린 '감자를 먹는 사람들'에서 보여주는 어둡고 깊숙한 하지만 친밀함이 담긴 소재 선택이었다. 그는 낡은 구두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처럼 매일 같이 거친 바람이 부는 황량한 대지에서 밭고랑을 매는 농부의 고난, 순종, 강인함을 보았던 것이다.
다른 화가들에게 낡은 구두는 관심조차도 생기지 않는 사물이었겠지만 반고흐에게는 불평 없이 일하고 노동이라는 고난을 극복한 뒤 찾아오는 수확에 대한 기쁨과 같은 숭고함이 담긴 농부의 신발이 되어주었다. 반고흐는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글·사진 | 강정모
유럽가이드이자 통역안내사로 일하며 세계 유명 여행사이트인 Viator 세계 10대 가이드로 선정된 바 있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와 여러 기업에 출강하며, 아트 전문여행사 Vision tour를 운영하고 있다.

